2015년 공연계는 스타의 얼굴로 기억될 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2016년 남편의 생일인 7월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실질적인 현역 은퇴를 하기 전 한국에서 현역 은퇴 무대를 선보인 강수진이 대표적이다.
뮤지컬에서는 조승우·JYJ 김준수·홍광호 등 스타들이 이름값을 해냈다. 메르스·검열 논란으로 유독 침체됐던 연극에서는 고선웅이 제대로 판을 깔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클래식음악, 콩쿠르의 위력…임지영·문지영·조성진
젊은 연주자들이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유독 두드러진 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5월 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했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만 20세로 야무지고 단단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임지영을 '2015년 제7회 금호음악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역시 만 20세인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또 다른 권위 있는 대회인 '제60회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했다. 게다가 2001년 이후 격년제로 바뀐 이후 단 3명에게만 1위를 안겨줬을 정도로 까다로운 대회로 유명하다. 그간 알프레드 브렌델,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을 배출했다.
만 21세의 조성진은 한국 클래식 역사의 획을 긋고 있다. 지난 10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발매된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은 1주일 만에 5만장이 완판됐다. 보통 국내외 클래식 연주자는 1000장, 유명 연주자는 2000장 정도의 초도 물량을 찍는다. 5만장은 무려 20배에 가까운 수치다.
또 2월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달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 2500석이 50분, 이후 추가된 이날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추가 공연은 35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조성진으로 인해 임동혁, 김선욱 등 스타 남성 피아니스트들이 새삼 주목 받기도 했다.
특히 임지영·문지영·조성진은 유학 경험이 없거나 한국에서 기본을 다졌다는 '국내파'라는 점에서 주목 받기도 했다. 세 사람은 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금호 영재 출신으로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조명받기도 했다.
한국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서울시향에게는 힘겨운 한해이기도 했다. 재단법인 10주년의 기념할 만해 해였으나 1년 전 벌어진 박현정 전 대표의 성추행·막말 의혹 논란은, 자신을 겨냥한 호소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그녀의 진정서 때문에 지리멸렬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서울시향이 발매한 음반 '진은숙 3개의 협주곡'(도이치 그라모폰)은 '국제클래식음악상'(ICMA)과 'BBC 뮤직 매거진상'을 받기도 했다.
굵직한 성악가들의 내한도 관심을 끌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첫 내한공연은 메르스의 광풍에도 매진됐고, 그는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줬다. '빅3 테너'(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의 뒤를 잇는 '제4의 테너'로 통하는 멕시코 출신 테너 라몬 바르가스도 첫 내한공연했다.
◇무용, 굿바이 강수진
무용계에서는 거장들의 현역 은퇴가 이어졌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지난달 6~8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인 전막 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한국의 현역무대에서 은퇴했다. 첫날 공연의 커튼콜에서 웃음 지은 강수진은 둘째 날 공연에서 눈시울을 붉히더니, 셋째날 마지막 공연 커튼콜에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특히 마지막 날 공연 커튼콜에서는 3막 무도회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들은 물론 스태프 등 100여명이 한 명씩 차례로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를 안겨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 꽃잎들까지 떨어지며 '뜨거운 안녕'을 보냈다.
앞서 10월에는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52) 단장이 하늘을 날며 현역 무대에서 떠났다. 이 단체의 20주년 기념 공연 '비잉'에서 와이어를 타고 공중을 날며 자신의 현역 무대를 마감했다.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인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이 창단한 단체로, 한국 첫 현대무용단으로 통하는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은 이달 초 40주년 기념무대와 함께 해단을 선언했다.
◇뮤지컬, 조승우·김준수·홍광호…스타의 귀환
뮤지컬은 올해 숨을 고른 한해였다. '난쟁이들' '지구멸망 30일 전' 등 재기발랄한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눈에 띄기는 했다. 하지만 주호민 동명 웹툰이 원작인 '신과 함께', 조정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아리랑' 등을 제외하고는 대형 신작 창작뮤지컬의 제작이 활발하지 않았다.
대신 검증된 라이선스 작품이 줄을 이었다.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았던 '맨 오브 라만차'를 비롯해 '원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등이 인기를 누렸다.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 앤 줄리엣' '시카고', 태양의 서커스 '퀴담' 등의 내한공연도 잇따랐다. 다만 '명성황후'는 20주년으로 한국 창작뮤지컬의 자존심을 세웠다.
대신 뮤지컬스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조승우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베르테르'까지 뮤지컬에 잇따라 출연하며 그의 무대를 원한 팬들의 그리움을 연신 달래줬다. 김준수와 홍광호는 뮤지컬 '데스노트'로, 남자 투 톱 뮤지컬의 매력을 한껏 전했다. 뮤지컬 '팬텀' 라이선스 초연은 류정한, 박효신, 카이 등의 뮤지컬스타들에 세계적인 디바 임선혜까지 합류하면서 화려한 라인업을 선사했다. 1000만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의 스타 황정민은 연말, 뮤지컬 '오케피' 라이선스 공연의 주역과 연출까지 맡아 약 2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숨을 고르는 와중에 실험도 이어졌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가상 마을을 다룬 라이선스 뮤지컬 '유린 타운(Urine Town)'은 10년 만에 재공연,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줬다. 7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라이선스 뮤지컬 '씨 왓 아이 워너 씨' 역시 다양성에 숨통을 틔웠다. '유린타운'과 함께, 올해 실험성으로 올해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이 대거 출연한 '인 더 하이츠' 라이선스 공연은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장르인 힙합과 스트리트 댄스의 절묘한 조합으로 호평 받았다.
◇연극은 수난의 해…고선웅 대활약
메르스 광풍은 특히 대학로 소극장 연극계에 막대한 타격을 줬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여파에 이은 2년 연속 타격이었다. 정부는 관객이 티켓을 한장 사면, 한장을 더 주는 '공연 티켓 1+1' 지원 사업을 내년 2월까지 연장했다.
당초 예정됐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지원 받지 못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갈등설에 휩싸이기도 했던 '제36회 서울연극제'의 파행도 연극인들에게 생채기를 냈다.
검열 의혹으로 시끌시끌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창작산실·아르코문학창작기금·다원예술창작지원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예술지원 사업에서 작가의 정치적 성향·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 등을 이유로 특정 작가·작품을 선정하지 말 것을 심사위원에게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장과 간부 2명은 센터가 자체 기획한 공연 프로그램인 '팝업 시어터' 중 김정 연출의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극인들이 검열에 반대한다며 1인 시위 등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발견이라 할 만한' 연극계 수작이 쏟아진 해이기도 했다. 객석 50석씩을 양쪽으로 나눠놓고 그 사이의 비좁은 무대에서 선보인 세 편을 묶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세월호 참사' 전과 후에 대한 연극적인 성찰을 내놓은 '비포 애프터', '비움 미학'의 절정을 선보인 '폭스파인더', 아서 밀러 고전의 매력을 새삼 일깨운 '시련'까지, 수작이 이어졌다.
특히 고선웅은 올해 '칼로막베스' '푸르른 날에' '홍도' 강철왕'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내며 주목 받았다. 뮤지컬 '아리랑',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도 그의 작품이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올해 처음 제정한 '올해의 연출가상' 초대 수상자가 됐다.
앞으로도 꼭 기억해야만 하는 내한공연도 이어졌다. 캐나다 출신의 천재적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의 대표 연출작 '바늘과 아편'은, 공중에 매달려 계속 돌고있는 대형 정육면체로 시공간을 뛰어넘으로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몰고갔다.
현대 공연예술의 거장 로버트 윌슨은 지난 10월 자신의 대표작인 음악극 '셰익스피어 소네트', 최전선의 실험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잇따라 선보이며 연극인들의 한쪽 뇌를 일깨웠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일본 거장 연극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가 무대로 옮긴 연극 '해변의 카프카'는 소설 속 환상의 세계가 무대 위에서 오롯이 축약되는 압축미를 선보였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 첫 내한한, 일본 스타 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농익은 연기와 매력은 무대 위 시간을 박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