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단색조회화 전시가 열린 레꼴레타 문화센터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이자 부유한 동네인 레꼴레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레꼴레타 문화센터는 1732년 완공되어 예수회 소속 수도사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사용되던 유서 깊은 건물로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시하면서 작품을 거는 것도 일일이 허락을 받고 의논을 해야 했다. 이 건물은 1870년대에는 노숙자들의 쉼터로 사용되었으며,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언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초대시장으로 부임한 토르쿠아토 데 알비어가 수도원 용도의 건물을 처음으로 문화센터로 사용하도록 했다. 드로잉 학교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1980년에 본격적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곳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미술전시와 공연, 문화행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간으로 손꼽힌다. 바로 옆에는 기둥의 성모성당이 있고 다시 그 옆에는 에비타 페론등 아르헨티나의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독립영웅들과 작가 과학자등 유명인들이 묻혀있는 레꼴레타 묘지가 있다. 이 묘지는 원래 원래 현재의 문화센터가 있던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채소를 기르던 정원이었다가 1822년 시의 명령으로 묘지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2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꼴레타 문화센터에서 개막한 '텅 빈 충만: 한국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전은 2014년 작년부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브랜드가치를 제고하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이미 중국의 상하이, 베이징, 독일의 베를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국립미술관, 브라질 상파울루 국립조각회화관(MUBE)를 순회한 바 있고 지난 9월에는 다시 홍콩의 PMQ에서 한국문화주간의 시각문화 프로그램으로 소개되어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전시를 보다 정선하여 한국미술의 새로운 전형으로 단색조 회화를 가다듬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개하는 것으로 기획된 2015년 개정판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한국선비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달항아리로 부터 그 근원을 찾아 연역적으로 풀어내는 형식의 전시이다.
권대섭, 김익영, 이강효, 이기조, 문평등의 달 항아리와 함께 한국의 전통의 토대에 모더니티를 부여해 새로운 한국미래 시각문화의 전통적 틀을 쌓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지난 해부터 참여하고 있는 최명영, 문범, 김택상, 박기원, 외에 새롭게 고 이승조, 서승원, 김춘수, 제여란, 천광엽 등이 가세하여 보다 강하면서도 조용한 한국회화의 정적인 참선 또는 묵상의 회화를 2016년 2월 14일까지 선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마련한 우수한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고자 작년부터 재외 한국문화원과 현지 문화예술 전문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을 발굴, 선정하여 세계 곳곳에 알리고 있는‘2015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된 전시였다.
한국미술에 대한 인지도는 특히 남미에서는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미술의 세계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하여 2007년과 2008년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에서 열었던 ‘박하사탕’전시이후 규모있는 전시로는 실로 7년만의 일이었다. 이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현지공관과 문화원의 노력도 컸지만 현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신문인 라 리시옹의 미술편집장이자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알리시아 데 아르테아가와 클라우디오 마세티(레꼴레타 미술관 관장)등 현지 미술전문가들이 나서서 한국의 단색조회화 전시를 요청해온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이 나선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증가가 청소년층으로 구성된 K-POP이나 비 보이 공연을 넘어 점차 깊이 있는 이들 대중문화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 깊이 있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최근의 한국의 70년대를 풍미했던 단색조회화에 대한 관심도 외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에 편승해서 상업 화랑들이 단색조회화 알리기에 집중했지만 우리 미술계 자체에서는 학술적, 미학적, 문화예술적 접근이나 이해, 평가부분에서는 그 열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는 달리 상업적인 입장이 아니라 미학적인 접근과 명상이라는 자기 수행적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보다 단색조회화를 정확하게 읽고 이 전시를 유치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은 신기롭기까지 했다.
이들은 특히 개막식에서 보여 준 김춘수(서양화가, 서울대 교수)의 시연에 숨을 죽이며 함께했고 이후 알리시아 데 아르테아가의 사회로‘한국 단색조 회화의 역사와 그 배경’에 대한 심포지움을 열었는데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단색조 회화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회화로서 이제는 세계 속에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단색조회화'는 이러한 열기를 바탕으로 남미를 거쳐 미술의 중심이라 할 뉴욕이나 파리, 런던, 베를린으로 진출해야할 방안을,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이다. 사실 우리문화가 이렇게 약진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국력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데 일조했다면 이제 문화가 나서서 나라의 경제와 수출,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여전히 개발도상국가형 문화정책의 틀과 생각에 젖어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당당한 자세로 한국의 문화를 앞장세워 세계와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주고받는 선진국 형 문화외교, 예술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