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무대 디자이너 이토 마사코(42·伊藤雅子)는 무대에 인간미를 불어넣는다. 단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하게끔 만든다.
따뜻한 뮤지컬 '심야식당'의 정감 있는 식당, 스릴러풍 심리 뮤지컬 '쓰릴미'의 차갑고 모던한 배경 등 장르에 상관 없다. 한국 라이선스 초연을 앞둔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서도 그녀의 역량이 한껏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통하는 이노우에 히사시의 미완 희곡을 일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겸 연출가 호라이 류타가 완성시켰다. 구리야마 다미야 연출, 후지와라 다츠야 출연으로 2013년 일본에서 초연해 호평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가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낸 두 군인의 실화가 모티프다.'전쟁 중, 나무 위'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대립과 이해로 우리의 삶 역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임을 말한다.
'나무 위의 군대'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네 번째 배우'라고 일컬어질 만한 거대한 뱅골 보리수로 채워질 무대다. 무대에서 천장까지가 높고 무대 뒤편의 공간도 넉넉해 무대 변형이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꽉 채운다.
이토 마사코는 e-메일 인터뷰에서 "두 병사가 2년 간 살았던 나무는 무대에서 절대 뺄 수 없는 요소"라며 "두 병사는 그 나무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 위에서의 생활이 '전쟁'이라는 무서운 것으로부터의 도망이었을지, 마지막 한 명이라도 남아서 적을 물리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는지는 모르겠다. 관객들에게 단순한 나무가 아닌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보였으면 한다"고 바랐다.
오키나와 이에 섬에는 지금도 두 명의 병사가 2년 간 생활한 뱅골보리수가 남아있다. "'행복을 부르는 나무' 혹은 '행복을 지키는 나무'라고 불리는 뱅골보리수는 생명력이 강해서 지면으로부터 많은 영양을 흡수하여 줄기와 몸통을 늘려간다"고 알렸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면 나무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분명 그곳에 있었다. 이 작품의 원안자인 이노우에 히사시는 생전에 '마지막엔 두 명의 병사가 나무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고 전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한국 스태프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무대의 공간감도 좋고, 층고도 높아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하다. 이토 역시 이 극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극장 도면을 받고 직감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극장이라는 것을 느꼈다. 미술가라면 누구나 디자인하기에 편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평가가 좋은 이런 멋진 극장에서 디자인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
'나무 위의 군대'와 비슷한 시기에 공연하는 연극 '취미의 방' 무대도 담당한다. 작년에 초연한 작품으로 '나무 위의 군대'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오타쿠' 이야기 이면에 휴머니즘을 숨겨둔 연극으로 플라스틱 모델, 고서적 등 역시 무대와 소품이 인물에 캐릭터성을 부여하는데 큰 역을 한다.
"'취미의 방'은 남자들이 취미 생활을 하는 방으로 각각의 취미와 그 공간을 확실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나무 위의 군대'는 타이틀대로 나무 위에 사는 병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무를 메인으로 삼고 전쟁을 피해 올라간 나무 위에서도 국가에 조종 당하는 병사, 더욱이 자국을 지배하려는 적국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려고 했다."
'나무 위의 군대'의 나무의 뿌리에는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다. 그 정기를 빨아들여 나무가 서있고, 상부에 있는 가는 줄기들의 라인은 몇 천만 희생자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나무 주위의 쇠파이프는 적국으로부터 공격받은 포탄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것이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적국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자국민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코의 한국 첫 작품은 2006년 '베세토 연극제'에 참가한 '갈릴레이의 생애'다. 이후 한국의 프로듀서가 일본의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개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잘자요 엄마' '심야식당' '쓰릴미'(한일공동) '취미의 방'의 작업을 했다. '나무 위의 군대'는 한국에서 6번째 작품이다.
한국과 일본의 작업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셋업의 경우, 일본과는 달리 의외로 천천히 진행돼 '언제 완성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며 웃었다. "한국은 셋업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적고 작업 시간이 길다면, 일본은 많은 작업자들이 짧은 시간 안에 셋업을 완료한다. 작업과는 관계없지만, 장기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도 굉장히 부럽다. 또 재공연 등의 계획이 확실한 것이 좋아 보였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공연계가 무대를 다루는 자세에서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우선 자신이 가장 크게 변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다음은 언제쯤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지, 두근두근하며 기다리게 됐다"는 것이다. "질문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답변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뮤지컬이 매우 성행하여 일본보다도 훌륭한 것 같다. 연기력, 가창력의 대단함에 놀랐다. 그 발전이 한국의 연극계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래 바이올린 강사가 꿈이었다는 이토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제국극장에서 뮤지컬 '올리버'를 본 순간 '이거다!'라고 무대디자이너로 꿈을 정해버렸다고 했다. 무대 디자이너는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연극적인 소양은 물론 인문, 예술, 그리고 공학까지 겸비해야 디자인이 가능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무대 디자이너의 자격 조건은 무엇인지 묻자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과 사물들에 흥미를 갖고, 그것들을 자신의 안에 축적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연극의 소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우, 어느 소재의 작품을 맡게 되더라도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다가간다고 했다.
"여러 나라를 돌며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밝힌 이토는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성공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몇 개의 난관을 뚫어야 한다"며 "그것은 찬스 혹은 운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준비돼 있지 않은 사람은 그 찬스와 운을 눈 앞에 뒀을 때 놓쳐 버리게 된다"고 짚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것들을 축적해둬야 한다. 거기에 어린시절부터의 감성이 더해져 '디자인'이 나온다. 감성은 지식처럼 배워서 길러지는 능력은 아니지만, 스스로 흥미를 갖고 알아가는 노력은 언제부터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 위의 군대'를 통해서는 "어떠한 인생이라도 그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인간에게 어떤 이념을 세뇌시키는 전쟁은 좋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2004년 출발해 흥행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들을 고루 선보인 대학로 브랜드 공연 '연극열전' 여섯 번째 시리즈인 '2016 연극열전 6'의 개막작이다. 신념과 권위를 중시하는 베테랑 군인 분대장 역에는 윤상화와 김영민이 더블캐스팅됐다. 삶의 터전인 섬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한 신병은 성두섭과 신성민이 나눠 연기한다. 1000년을 사는 나무의 정령인 여자는 강애심과 유은숙이 번갈아 맡는다. 12월19일부터 2016년 2월28일까지. 연출 강량원, 번역 김태희, 조명 최보윤, 음악 장영규, 의상 강기정. 연극열전. 02-766-6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