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세수가 최근 3년간 해마다 수조원에서 많게는 10조원씩 펑크나고 있다. 복지 증가 등으로 씀씀이는 많아지는데, 경기침체로 걷어들이는 규모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들어 지난해보다 세금이 더 잘 걷히고 있다지만, 여전히 수조원의 세수결손을 불가피한 상황이다.
때문에 이를 벌충하기 위해 현 정부가 내세운 게 지하경제 양성화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녹록치 않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하경제의 정확한 실상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정부의 양성화 실적 뻥튀기 논란이 벌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이다.
정부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140개 국정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5년간 50조7000억원의 세입을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입 확충 목표는 27조2000억원이다.
지하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집계에서 누락된 모든 경제활동을 뜻한다. 형태별로는 장물 거래, 마약 거래, 매춘, 밀수 등 불법적 활동과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 등 합법적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분석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대략 GDP의 20%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트리아의 지하경제 분석 전문가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린츠대 교수는 지난 2012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의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를 26.3%로 분석했다. 또 국내 연구기관 중 현대경제연구원은 23%(2013년), 조세재정연구원은 17%(2010년) 수준으로 지하경제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나라에 비해 자영업 비중이 커 소득 탈루율이 높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지하경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4%)에 비해 약 8%포인트 높다.
정부가 지하경제 규모를 1%만 줄여도 수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GDP 대비 지하경제 비율이 26.3%라고 가정할 경우 2014년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390조6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현재 조세부담율(17.9%)을 적용해 추가 확보 가능한 세수 규모를 추정하면 69조9000억원에 이른다. 지하경제 규모를 1% 줄이면 2조6000억원,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일 경우 21조원의 세수가 확보되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해 온 지하경제 양성화가 목표대로 실적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세청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2013년 2조1000억원(목표 2조원), 2014년 3조7000억원(목표 3조6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3년간 세수 실적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세수 펑크'를 냈다. 세수 결손 규모는 2012년 2조8000억원, 2013년 8조5000억원, 2014년 10조9000억원으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경기 부진으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 효과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하경제 양성화가 목표만큼 실적을 냈는지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올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여야는 국세청의 2014년 지하경제 양성화 실적(3조7000억원)이 직전년도가 아닌 2012년과 비교한 수치라는 점을 문제삼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최재성 의원은 "지난해 지하경제 양성화 실적이 3조7000억원이라고 했는데 아무리봐도 1조6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2012년과 비교하면 당연히 실적이 커진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국세청이 목표를 초과했다고 발표한 지난해 실적 3조7000억원의 지하경제 양성화 세입확충 실적은 자연증가분을 제외할 경우 1조9천300억원 정도가 과다 계상됐다"고 지적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세정 당국이 주로 사용하는 정책 수단은 세무조사 강화다. 하지만 세무조사 강화에 따라 조세 불복 사례가 급증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납세자가 정부의 조세 관련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사건은 2012년 8728건, 2013년 9717건, 2014년 1만877건 등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조세 불복으로 인한 소송도 급증했다. 행정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처리된 조세 관련 소송 사건은 2011년 2093건에서 2013년 2584건으로 2년 만에 23% 가량 증가했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발표한 '2013년도 총수입 실적' 보고서에서 "무리한 징세행정에 따라 기업 경기가 위축 되고, 향후 소송패소·불복환급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지속적인 세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식으로는 큰 폭의 세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금융실명제,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축소돼 왔다"며 "여기에서 지하경제 규모를 획기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수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세정개혁 토론회에서 "국세청의 자체적인 세정개혁 내용을 보면 방대한 지하경제의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정권에서 부여한 현실적인 목표에 대해 수치·형식적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세행정감독위원회를 설치해 국세청의 업무성과, 세무조사의 엄정성, 정치적 중립성, 공무원 비위행위 등의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를 매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며 "또 임대소득, 고소득 자영업, 기업, 해외은닉자산, 상속 및 증여세 등의 탈루를 막기 위해 국세행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