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사장은 다소 긴장하고 굳은 모습이었지만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하게 재판에 임했다. 조 사장을 비롯한 3명이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특별한 의견을 진술하지는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윤승은)는 3일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40분간 독일 최대 가전박람회 'IFA'에서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성진 사장을 비롯한 LG전자 임원들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조 사장은 이날 오전 9시 50분께 공판 참여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막하게 소감을 밝힌 후 입장했다. 조 사장은 공판을 앞두고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조용히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3월 31일 세탁기 파손 분쟁, 디스플레이 특허 분쟁 등 현재 진행 중인 모든 법적인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재판의 조기 종결을 기대하고 있다.
검찰도 공판에서 "기소 이후에 양측이 합의해 난처하다"면서도 "(일단 공소가 제기되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LG전자 변호인단은 이날 컴퓨터 그래픽과 동영상이 포함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LG전자 측 변호인은 삼성전자의 크리스털블루 세탁기(드럼형)의 구조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도어후크와 레치홀이라는 부분을 정확히 묘사해 세탁기 문을 닫는 장면과 닫히는 원리 등을 공개했다.
또 드럼 세탁기의 문이 흔들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과 본체를 연결해주는 경첩 부분이 힌지가 2개이고 회전축도 2개라서 공간이 많고 유격이 잘 돼 원래 잘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조성진 사장이 파손한 게 아니라 원래 잘 흔들리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특히 당시 현장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을 때는 검찰과 LG전자 측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LG전자 측에서는 사각지대와 구조물 등으로 인해 CCTV 영상 확인이 쉽지 않자 각자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2개의 CCTV 영상을 하나로 합친 편집 영상을 방영하려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사전에 증거로 제출한 영상도 아니고 편집 과정에서도 투명하지 않아 증거 채택이 어렵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LG전자 측이 "2개의 영상을 시간의 순서에 맞춰 동시에 보여주는 것일 뿐 영상을 공개하는 데 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자 재판부는 이를 수용했다.
이 영상은 조 사장이 삼성전자에서 고용한 독일 대학생 홍보 직원들을 의식해 세탁기를 고의로 부수려는 모습이 담겨있는지 등을 담고 있다.
한편 검찰은 오는 21일 2차 공판에서 공소 대상인 파손된 세탁기 3대를 포함, 서울중앙지검에 보관된 총 7대의 세탁기와 비교 대상이 될 정상 세탁기를 최소 1대에서 최대 3대까지 검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