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법정 공방을 마쳤다. 다음달 1일 재판부의 결정이 나오면 이후부터 주주총회 개최일(7월17일)까지 양측의 싸움은 몇가지 핵심 '변수'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김용대 수석부장판사)는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 소집 통지 및 결의 가처분과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첫 재판을 열었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은 미래 가치를 위한 것이며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고 엘리엇은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됐다"며 반박을 펼쳤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입장을 전해오던 양측은 이날 법정에 서서 각자 준비해 온 카드를 모두 꺼내보였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주총 소집 공고일(7월2일) 전날인 다음달 1일 오전까지 결론을 낼 방침이다.
두 건의 가처분 신청 결과는 주총에서의 '표대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단 거기서 끝이 아니다. 법원 결정이 나온 뒤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 하나가 삼성과 엘리엇 대결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재판부는 추가 소명자료가 있다면 오는 25일까지 제출하라고 양측에 요청했다. 1차 심문에서 총력전을 펼친 만큼 앞으로 새로운 논리가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히든카드'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당성과 준법성을 지닌 합병인 만큼 당장 추가 소명자료를 낼 계획은 없다"며 "그러나 추가로 해명해야 할 사안이 생긴다면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전했다.
엘리엇은 복병을 만났다. 자신들의 의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했던 한영회계법인이 엘리엇에 대한 소송 방침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한영회계법인은 19일 "엘리엇이 심문에서 인용한 보고서는 합병을 위한 가치산정 보고서가 아닌 투자보고서"였다며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공개할 수 없는 내부 의사결정용 초안 자료를 사전 승인 없이 임의로 삭제하고 법원에 제출한 엘리엇에 대해 법적 조치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합병의 정당성과 합병 비율 산정의 적절성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던 만큼 한영회계법인이 소송전에 나설 경우 엘리엇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특히 그들이 법정에서 내세웠던 모든 주장의 신뢰성도 타격을 입는다.
엘리엇의 국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뉴스커뮤니케이션스 관계자는 "아직까지 엘리엇 측으로부터 한영회계법인, 추가 소명자로 등 향후 계획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총 표대결에 초점을 맞춘다면 글로벌 의결권 자문 기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판단이 최대 변수다.
ISS는 미국 금융사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로 세계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조언한다. 영향력이 막대하다.
현재 삼성은 삼성SDI, 삼성화재 등 특수관계인 지분 13.82%와 자사주를 매각한 KCC 지분 5.96%를 합해 총 19.78%의 삼성물산 우호지분을 확보 중이다.
엘리엇은 7.12%의 보유 지분에 네덜란드 연기금(APG) 등 해외투자자와 국내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삼성물산 1대 주주인 국민연금(10.2%)과 외국인 주주(33.61%)들이 합병 성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ISS 보고서다.
엘리엇은 ISS를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www.fairdealforsct.com)를 개설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한 엘리엇의 시각'이라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어 영문으로 작성된 27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최근 ISS에 제출했다.
삼성도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들이 ISS 및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SS는 다음달 초 공식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추가 공방전이 없다면 세대결을 벌인 삼성물산과 엘리엇은 주총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합병과 같은 특별결의의 경우 주총에 전체 주주의 3분의1 이상이 참석해야 하며, 이 중 3분의2가 동의를 해야 통과된다.
엘리엇이 3분의1 이상의 표를 결집한다면 의지대로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고 삼성물산이 이를 방어한다면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게 된다.
합병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의안에는 주식매수청구액이 1조5000억 원을 넘어서면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얼리엇 동맹이 매수청구권을 1조5000억원 이상 행사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해 볼 수 있지만 현재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권가격은 5만7234원이고 시장가격(20일 종가 기준)은 6만4600원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식매수청구 기간은 총회 결의일부터 20일 이내인 7월17일부터 8월6일까지다.
합병 대결은 9월에 마무리된다. 합병기일은 9월1일, 합병등기예정일은 4일로 예정돼 있다.
합병 후에도 엘리엇의 대처를 눈여겨봐야 한다.
상법에 따르면 해당 기업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을 지닌 주주는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엘리엇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3% 넘게 보유하면 주총 소집을 청구하거나 이사해임을 건의하는 등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이 이를 10.4% 이상까지 끌어올리면 통합 삼성물산에 대해 3%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막지 못해도 이후 꾸준히 경영에 참여하며 장기전을 펼칠 가능성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