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은 지난해 이후 금리를 내릴 때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 규모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 왔지만, 기재부와 금융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계부채 해법에 대해서도 양쪽의 시각차가 크다. 기재부는 대출 총량 억제보다는 질적 구조 개선에 중심을 두고 있는 반면 한은은 이제 총량 관리 검토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및 금융당국과, 한은이 손발을 맞춰 나가도 시원찮은 판에 이처럼 엇갈린 인식을 보이는 건 제대로 된 가계부채 대응책 마련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 "가계부채 경계심 높여야"…'총량 규제' 불지펴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이번달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1.50%까지 끌어내린 이래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과 맞물려 가계부채 규모가 심상치 않게 불어나자, 최근 정책 당국에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금통위원들과 공유한 내용을 직접 공개하며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채 총량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이 총재가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지만 금통위원들의 인식까지 공개하며 적극적인 대응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가계부채의 총량 관리를 주문한 점에 있어서도 기존의 입장과 결이 다르다.
이 총재는 그 동안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소득 증가율과 함께 바라보면서 '부채 증가율 억제는 소득 증가율 이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가계부채의 절대 수준을 줄이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견해였다.
하지만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이 총재가 총량 규제로 강경하게 선회한 것은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소득증가율을 웃돌자 임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 정부와 금융당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제65주년 행사 기념사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소비를 제약하고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가계부채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며 "정부와 감독당국 등과 긴밀히 협력해 가계부채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재부·금융당국 "가계부채 부실화 가능성 낮아"
반면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아직 관리 가능한 단계라는 판단이다. 때문에 가계부채 총량 규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이다. 대출구조 개선 등 미시적 관리를 통해 건전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는 질적구조 개선에 방점이 찍혀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로 제2금융권 대출을 은행권 저금리 대출로 전환토록 한 것과 변동금리 대출을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시켜주는 안심전환대출 상품을 출시한 것 역시 대표적인 질적 구조 개선 정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연체율은 0.78% 정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5% 정도 되는데 미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4~5%나 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여러가지 여건들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일각에서 총량 관리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총량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정부와 입장이 같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가계의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2배 많고 연체율도 0.5%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가계부채가 부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며 "총량 규제는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적 규제 대신 질적 개선을 위한 종합 서민금융지원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문제는 관계부처와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미시적인 대응이 필요할 경우 신속히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