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여파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점차 커지면서 정부가 서둘러 경기 보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기 부양 효과를 제대로 내려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정부의 재정 확대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경'이냐 '재정보강'이냐를 놓고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경기의 흐름을 확실히 돌려놓으려면 추경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추경은 추진 요건도 까다롭고 집행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정부 빚을 늘려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신속한 집행이 가능한 기금 지출 확대 등 재정 보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함께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한 뒤 경기 보완 대책을 마련, 이달 중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고려할 수 있는 첫 번째 수단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당초 추경 편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던 정부는 최근 메르스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하자 추경을 포함해 모든 정책 대안을 검토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메르스 피해업종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불안심리 확산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 점검해 필요 시 추가적인 경기 보완 방안 마련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경기 침체 우려가 있을 때 추경을 편성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13년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자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 이후 편성된 16번의 추경 중 10번은 경기 부양 목적이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도 수출 부진과 메르스 사태로 인한 내수 침체가 우려되는 만큼 확장적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15조원 이상의 대규모 재정 투입이 뒤따라야 경기 부양 효과가 제대로 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상황으로 볼때 경제성장률이 2%대 중반까지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와 재정 투입을 함께 해서 정책적 상승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2%대 중반의 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려면 14조~15조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해야 하고,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서도 5조~10조원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추경 편성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된다.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5조8000억원으로 2014년 전체 적자 규모(29조5000억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확대됐다. 나랏빚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중앙정부 채무는 521조6000억원으로 연초 대비 18조6000억원이나 늘었다.
경기 부진에 따른 세수 결손이 재정건전성 악화의 주범이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세수 펑크'를 냈다. 세수 부족 규모는 2012년 2조8000억원, 2013년 8조5000억원, 2014년 10조9000억원으로 매년 확대되고 있고 있다. 올해 세수 실적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4년 연속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재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추경을 해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재정을 풀어도 언젠가는 세금을 내서 적자를 메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제 주체들은 오히려 소비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메르스 사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되지 않는다면 경기는 3분기를 지나면서 반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정까지 투입할 만큼 긴박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추경 편성을 결정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국회를 통과하는데 2~3개월은 소요되고, 실제 현장에서 집행되기 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런 시간차로 인해 효과가 크게 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추경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기금 지출 등을 통한 재정 보강이다.
최 부총리가 취임하던 지난해 7월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새 경제팀은 추경 편성 대신 재정 보강과 금융 지원 확대 등을 포함한 41조원 규모의 '정책 패키지'를 대안으로 내놨다. 추경 편성으로는 신속히 재정을 집행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정부는 당시 기금 지출 확대 등을 통해 11조7000억원 규모로 재정을 보강했다.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주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의 지출을 확대하는 방법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금은 지출액의 20% 범위 내에서 정부가 증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추경보다는 빨리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41조원의 정책 패키지 중 29조원은 금융 지원을 통해 이뤄졌다. 산은, 기은, 수은 등의 정책금융 지원과 외평기금의 외화대출 지원 등을 확대해 시중에 돈이 풀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추경에 비해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금 지출의 경우 해당 기금의 성격에 따라 쓸 수 있는 분야가 제한돼 경기 부양 효과가 큰 사업에 자금이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금융지원의 경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가 낮은 상황에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도 바로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에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세출과 기금 지출 확대를 함께 썼다"며 "절차가 간단한 기금과 정책금융을 우선 활용하고 그것으로 부족할 경우 추경으로 보완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