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고리원전 1호기의 재연장을 추진하지 말자는 에너지위원회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에 전달키로 했다고 밝혔다.
원자력안전법에서는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이 수명연장을 신청하려면 설계수명이 다하는 날을 기준으로 2년전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는 18일이 재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마지막날이다.
하지만 한수원이 정부의 권고를 거부할 위치해 있지 않아 폐로 수순을 밟을 건 분명하다.
이날 에너지위원회는 노후원전의 안전성 등을 우려하는 지역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부에 고리1호기의 폐로를 권고키로 했다. 이에 따라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기간인 2017년까지만 가동된 후 폐로의 길을 걷게 된다. 국내 첫 원전이자 첫 폐로원전이란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다했다가 전력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2008년 1월 1차로 10년간의 재가동을 승인 받은 바 있다.
◇2차 연장 포기 왜
정부가 재연장 포기를 결정한데에는 안전성을 우려한 지역주민과 여권까지 합세한 정치권의 반대, 현실적인 측면 등 다각적 면이 고려됐다.
고리1호기는 2008년 설계수명을 다한 후 당시의 전력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재가동 됐지만 2012년 2월 발전소 전원이 12분간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숨기고 가동했다가 발각돼 노후원전의 안전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한 부산지역 120개 단체가 모인 고리1호기 폐쇄 부산범시민운동본부는 지난 10일부터 고리1호기의 폐쇄를 요구하며 부산시청에서 농성에 돌입했고, 울산시의회 원전특별위원회가 울산시민들을 상대로 고리원전 1호기의 재수명 연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무려 73.7%나 나와 압박수위를 높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김기현 울산시장도 지난 9일 윤상직 산업부 장관을 만나 폐로를 직접 요구하기도 했으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부산시민들의 원하는 쪽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2차 연장 포기에는 신규 발전소들이 속속 건설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노후원전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적인 면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제7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전력설비용량은 10만2722MW로 설비예비율은 21.4%에 이른다. 올해 9만2438MW, 12.1%보다 배이상이 상승한다.
2017년에는 26.9%(11만1954MW)로 전력수급 안정기에 접어들어 설비예비율 비중이 0.5%(58MW)인 고리원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이번 기회에 정부는 그동안 국민적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후원전에 대한 가동에 집착을 보이면서 국민이 아닌 발전사의 이익만 추구했다는 비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끝으로 '폐로기술의 선점'이란 측면에서도 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의 폐로를 결단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2년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자력 관련 연구비용중 원자력 해체 등 폐로분야에 투입된 연구비는 단 1%에 그쳤다. 저방사능 소규모 시설에 대한 폐로기술도 원자력 선진국에 비해 70%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2020년대에만 노후원전 10기가 설계수명에 이른다. 폐로기술 연구에 돌입해야 하는 이유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도 11일 국회 산업위의 답변에서 원전 해체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과 원전 폐로 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말해 고리원전 1호기 폐쇄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전의 해체 기술이나 기간은 정해놓고 하면 된다.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라며 "더욱이 해체작업에 많은 관심들이 있는데 예상보다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