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 채권단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에게 금호산업을 매각키로 한 가운데 채권단의 요즘 분위기는 느긋함 그 자체다. 최근 호반건설의 6007억 단독 입찰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을 때와는 딴판이다.
매각가를 놓고 박회장 측과 최소 2000억원, 많게는 4000억 가까이 괴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도 "급할 게 없다"며 개의치 않은 분위기다. 앞으로의 '밀고 당기기'를 위한 표정관리일까?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박 회장에게 매각할 금호산업 지분 50%+1주의 가격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7900억원'이상을 고려하고 있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만큼 최대 1조원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박 회장은 금호산업은 6000억원 수준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액수는 재계에서 보고 있는 박 회장의 현금 동원 능력이기도 하다.
격차가 이렇게 큰 데도 채권단은 여유작작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어서 서둘러 투입 자금을 회수할 이유가 없다"며 "서로 바라보는 차이가 클 경우 추후 다시 매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박 회장이 7900억원에 지분을 매입하지 못할 경우 우선협상권이 6개월 간 상실되는 만큼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특히 가격이 비싸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 매각가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박 회장이 자금상의 이유 등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 다른 업체들에 재매각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 경우 채권단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박 회장이 빠질 경우 살 곳은 많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지난번 국적항공사 경영권을 인수할 유일한 기회임을 적극 홍보했지만 박 회장의 적극적 인수의사를 표명한 탓에 입찰참여가 부정적 이미지 형성으로 이어질까 부담을 느끼는 기업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신세계가 최고 경영진의 결정으로 인수의향서 접수를 철회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박 회장이 빠지면 참여하는 기업이 늘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금호산업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미 박회장과의 개별 협상을 결정한 순간 주도권이 박회장에게 넘어갔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채권단이 호반건설이 제시한 6007억원을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호산업에 우발채무가 많은데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지급 보증 등으로 인한 손실 예상액도 750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회계법인은 금호산업이 5000억원 초반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련한 박 회장이 PF 사업장 우발채무를 금호산업의 인수가격을 깎는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매각 실패 시 책임론이 부각되는 것도 채권단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상화 된 기업을 언제까지 주인 없는 채로 남겨둘 것이냐"'는 힐난이 쏟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의 여유로운 모습은 매각 전략으로 봐야 한다"며 "7900억 이상 주고 살 매수자를 찾기가 생각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호산업 매각 작업은 채권단의 의견이 공식으로 모이는 오는 18일부터 재점화한다. 박 회장에게 매각방침을 통보하고 우선 실사를 통해 매각가를 박 회장에게 제시할 방침이다. 박 회장이 이를 수락하면 나머지 7.48%의 지분은 채권단 회의를 통해 블록세일이나 장내매수 등을 통해 처분할 방침이다.
물론 박 회장이 조건을 받아드리지 않을 경우, 우선협상권은 일정시간 효력을 잃게 되며 채권단은 금호산업은 제3자를 통해 팔거나 매각을 연기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