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배우의 운명이란 이런 것" '화장'의 김호정

  • 등록 2014.10.05 21: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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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가는 고통을 표현하는 게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내가 연기를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죠.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촬영은 수월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화장'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죽어가는 아내를 누구보다 성실히 간호하지만, 동시에 부하직원에게 마음을 뺏긴 남자의 혼란과 고독, 슬픔을 담았다.

'화장'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혼돈의 남자 '오상무'를 연기한 국민배우 안성기를 비롯해 오상무가 남몰래 사랑하는 여자 '추은주'를 연기한 김규리 등이 극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김호정(46)이다. 김호정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 '진경'을 연기해 관객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그는 텅빈 표정으로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상무의 혼란은 진경을 연기한 김호정의 슬픔으로 극대화된다.

김호정은 영화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놨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감행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체중을 감량하고 성기 노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이 말하는 "불편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김호정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바로 오상무가 진경을 씻겨주는 장면이다. 병세가 깊어진 진경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오상무는 그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진경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인 자신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오상무에게 안겨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이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건 김호정의 노출 때문이다. 이 노출은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상무와 진경의 좌절과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수단이다. 무너져가는 신체는 어쩔 수 없이 치부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게 하고,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한다. 김호정의 초라한 알몸은 임권택 감독의 말처럼 "현실감을 아주 농도 짙게 관객에게 줬고, 관객을 크게 설득한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출을 하기로 했어요. 촬영이 어려웠다기 보다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하는 장면이니까 (촬영에)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김호정은 4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화장' 기자회견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역시 실제로 오랜 시간을 암과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투병 사실을 고백했지만, 함께 자리한 이종관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언급하자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옆에 앉았던 김규리 또한 처음 듣는 김호정의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임권택 감독님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와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나서 시나리오를 펼쳐보니 투병자 역할인 겁니다.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배우의 운명이란 이런 거라고 생각했죠."

김호정은 영화 '침향'(1999) '나비'(2001) '꽃피는 봄이 오면'(2004) 등에 출연했다. 이미 연극계에서 인정받은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연예뉴스팀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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