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네럴모터스(GM)가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사업을 철수키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국내 자동차 업계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GM은 지난 5일 2016년부터 유럽시장에서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고, 유럽 시장 점유율이 1%에도 못미치는 쉐보레 브랜드는 2015년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문제는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판매 중인 쉐보레 제품 라인업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생산 중이라는 점. 지난해 한국GM이 생산한 유럽 수출물량은 18만6000대로, 즉 GM의 이번 사업전략 수정으로 2016년부터 한국GM 연간 생산량의 20%에 해당하는 물량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업계에서는 한국 공장의 생산물량 감축이 향후 한국GM에 구조조정 등 다양한 후폭풍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GM의 사업전략 수정은 GM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국GM측은 "한국시장 철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GM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생산직을 포함해 3차 희망퇴직 접수가 시작될 것이라는 루머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로이터통신도 자동차 리서치업체 IHS오토모티브의 자료를 인용, 제너럴 모터스(GM)가 한국 공장에서의 차량 생산대수를 2015년에 올해 대비 20% 가까이 줄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80만대의 생산물량이 2015년에는 65만대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통신은 지난 8월에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GM의 한국철수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GM 관계자는 "내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 실시로 생산물량이 감소될 것으로 전망돼 당장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필요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일부에서는 점진적인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현재 직원들은 회사에서 어떠한 후속 조치를 내놓을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본사의 발표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며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로 노조원들의 불안감만 높아지고 있다. 조만간 공식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GM과 르노삼성차의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들 두 회사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되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 세계에 공장을 가진 회사인 만큼 생산성이 낮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 생산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효율성이 높은 공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르노그룹의 한국 시장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달 26일 르노그룹의 최고성과관리책임자(CPO) 제롬 스톨 부회장은 한국을 방문, 일부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부산 공장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 자동차업계의 임금이 비싸다"며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의 경쟁력은 르노닛산 가운데 중간 수준으로 다른 공장과 경쟁하려면 비용을 낮추고 생산 효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세계시장에서 차를 파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가장 경쟁력 있는 공장에 생산 물량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는 강도 높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환경이 어려워지자 GM과 르노 등 모기업들이 글로벌 전략 수정을 통해 한국 공장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며 "국내 임금수준이 높아지면서 전세계 공장들과 경쟁하기에 국내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그 이전에 르노와 GM이 한국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GM은 소형차 연구개발을 제외하고 한국 공장의 역할을 모두 줄였고, 르노 역시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차종을 개발하는데 소홀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GM과 르노삼성차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개발한 차종을 살짝 변경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격면에서도 현대·기아차와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제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데다 수입차들의 공세가 강화되자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뺏긴 것은 현대·기아차가 아니라 한국GM과 르노삼성이 됐다"며 "한국 시장에서의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라인업 확대 및 신차 개발 등을 하지 않은데 대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물량 축소, 구조조정은 지역 및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며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책임도 크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