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정부 각 부처의 경제 관련법 상당수가 경미한 행정 위반에도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징역과 벌금은 물론, 과징금과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는 중복제재 구조가 기업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경제법률 형벌 조항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 활동과 관련된 21개 부처 소관 346개 법률에서 총 8403개의 위반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중 91.6%에 달하는 7700여 건은 양벌규정이 적용돼 법 위반자뿐 아니라 법인도 함께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양벌규정이란 법인의 대표자가 위법행위를 한 경우 기업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말한다.
기업 활동 관련 위반행위 가운데 '징역 또는 벌금' 외에도 과징금과 손해배상 등 복수의 제재가 부과될 수 있는 항목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어선다. 일부 법률은 최대 5중 제재까지 가능해, 동일한 위반행위에 대해 여러 처벌이 중첩되는 구조다.
한경협은 이 같은 중복 제재가 기업의 법적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미한 행정 절차상 착오나 단순 누락에도 형사처벌이 뒤따르는 경우가 있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등 법무 인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사소한 실수로 형사처벌 위험에 놓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는 간담회에서 부품 가격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중소기업 대표가 담합 혐의로 조사받는 경우가 있었다.
또, 손님 편의를 위해 점포 앞에 천막형 테라스를 설치한 음식점주가 '무허가 증축'으로 고발되거나,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을 담당하던 실무자가 친족의 개인정보 제공 거부나 연락 두절 등으로 일부 자료를 누락해 형사처벌 위험에 놓인 사례도 나왔다.
한경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는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 등 중대한 경제범죄에만 형사처벌을 적용한다며 우리나라처럼 단순 행정의무 위반까지 형벌로 규율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집단 지정자료 미제출 같은 단순 행정 의무 위반의 경우 금전으로 제재를 가하는 '행정질서벌'로 전환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중복제재와 단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 제도는 경영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라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