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헝거게임: 캣칭파이어’(감독 프랜시스 로렌스)는 지난해 나온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감독 게리 로스)의 후속편이다. 수전 콜린스(51)의 디스토피아 소설 ‘헝거게임’ 3부작을 차례로 영화화한 것이다.
완결편 ‘헝거게임: 모킹제이’는 파트1과 파트2로 나뉘어 내년과 내후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청소년 대상 소설 ‘트와일라잇’ 4부작은 2008~2012년 5편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제작사 라이언스게이트는 ‘헝거게임’ 시리즈를 그 뒤를 이을만한 재목으로 보고 있다.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이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리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북아메리카 등지에서는 성적이 꽤 좋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이언스게이트는 ‘트와일라잇’ 프랜차이즈의 최종편인 ‘브레이킹 던-파트2’의 제작과 배급에 부분 참여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다.
제작비 7800만 달러를 들여 거의 7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거둬들인 덕분에 2편에는 전편의 배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감독도 ‘콘스탄틴’(2005), ‘나는 전설이다’(2007) 등의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경력의 프랜시스 로렌스(42)로 갈렸다. 그가 3, 4편의 메가폰까지 잡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편은 1편이 보여준 신선함과 긴장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후편이 예정돼있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TV 방영이 예정된 드라마 시리즈가 아닌 이상, 독립된 영화 한 편으로서의 완성도와 완결성을 지녀야한다. 그런데 남녀 24명이 ‘헝거게임’을 치른다는 내용 면에서 전편과 그리 달라진 점도 없고, 인상 깊은 진행상황도 없다. 세트만 좀 더 웅장해지고 볼거리가 좀 화려해진 정도다. 다음 편을 위한 포석인 반전 결말만이 덩그러니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래의 독재국가 판엠은 수도의 캐피털과 1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모든 권력과 부가 캐피털에 집중돼있다. 13개 구역의 반란이 실패하고 주동지역 13구역이 핵폭탄으로 완전 파괴된 후 매년 헝거게임을 개최하게 된다. 남은 12개 구역에서 추첨을 통해 소년소녀 한명씩 총 24명을 참가시켜 최종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바이벌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전편에서 여동생을 대신해 74회 대회에 출전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가 비극적 사랑을 연기해 12구역에서 함께 출전한 피타(조슈 허처슨)와 공동우승으로 생존하게 되면서 캣니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혁명의 상징이 돼버린다.
‘헝거게임: 캣칭파이어’는 곳곳에서 반란의 움직임이 보이자 캣니스를 제거하기 위해 75회 대회를 기존 게임 우승자들을 출전시키는 ‘왕중왕전’으로 치른다는 내용이다. 146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헐겁게 흘러간다. 기차를 타고 각 구역을 돌며 지난 대회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우승자 투어 중에는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을 들어보인 이들이 평화유지군에게 진압당하는 모습을 한 참 보여준 후 마침내 대통령궁에서 열리는 파티에 도착한다.
연습장에서 게임장에 투입되는 과정도 전편과 별로 다를 바 없고 멘토, 스타일리스트의 참여, 토크쇼나 중계방식도 새로울 것이 없다. 출연진만 바뀌고 게임의 무대만 좀 업그레이드됐을 뿐이다. 결혼식, 임신,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을 살리지도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별 갈등과 사건을 일으키지 못하고 지나간다.
서로 자신을 희생하려 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판엠의 전횡이나 캣니스가 저항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도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한다. 인물 간의 감정과 로맨스도 지지부진하고 그나마 본격적인 게임에도 영화가 시작된 후 80여분이나 지나서 돌입한다. 전편에서는 이 게임에서 벌어지는 각종 액션과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나오는 사연들이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을 줬지만, 이번 편에서는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다.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용일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마 제작진은 이미 제작이 예정돼 캐스팅까지 결정된 2014년과 2015년에 선보일 후속작들을 위해 아껴놓은 것이 많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케빈 파이기(40) 마블스튜디오 제작사장의 인터뷰를 들려주고 싶다. “많은 영화 제작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다음 편을 위해 살려두지만, 난 지금 제작하는 영화에 가장 좋은 콘텐츠를 집어넣는다”는 것이 마블스튜디오 영화의 한결같은 성공비결이라는 귀띔이다.
이 가운데 여주인공 제니퍼 로렌스(23)의 존재감만은 뚜렷하다. 일찍이 연기에 뜻을 품고 2년 먼저 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해버린 이 똑똑한 젊은 여배우는 독립영화 ‘버닝 플레인’(2008)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연기상을 타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입증했다. ‘윈터스 본’(2010)으로 시애틀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스톡홀름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비롯해 온갖 상을 휩쓸더니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스물둘의 나이에 오스카와 골든글로브를 모두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사실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이 실재감을 가지게 된 것도 제니퍼 로렌스의 공이 크다. 179㎝의 볼륨 있는 몸매에 통통한 볼살이 여전한 로렌스는 처절한 감정을 생생하게 연기해내며 이 SF영화에 사실감을 부여했다. 동양인을 닮은 쌍꺼풀이 가늘고 깊은 눈이 진정성을 더하며 진솔한 표정연기가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미국에서는 ‘대세 배우’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에 한껏 빠진 팬들과 ‘헝거게임’에 열광하며 다음 편을 기대하는 청소년층이 몰려들며 기본 이상의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 3, 4편에 본격적인 내란과 전쟁이 담겨있다고 하니 보다 스펙터클해질 것은 분명하다. 4부작이 확정된 시리즈여서 아무리 기대감을 가지고 접근하려 해도 이번 편은 내용면에서 너무 성의가 없다.
원작자가 모티프로 삼은 로마문화의 잔재를 파악해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를 던져준다. 전편의 게임운영자 세네카, 후임인 플루타르크, 시저, 옥타비아, 플라비우스 등 판엠에 사는 인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고대로마에서 온 것이다. 로마귀족의 부패를 상징하는 일화 중의 하나는 새로운 음식을 먹기 위해 목구멍을 깃털로 자극해 토하고 또 먹는다는 것인데, 타 구역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판엠에는 계속 먹기 위해 토하게 만들어주는 음료가 존재한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대형경기장에서 전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로마에의 오마주다.
무엇보다 헝거게임 자체가 로마의 검투사 경기의 재현이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살육해야하는 경기는 체제유지를 위한 유흥거리 제공이라는 목적으로 지속됐다. 당대 시인 유베날리스는 이를 ‘빵과 서커스(빵과 게임)’이라고 풍자했다. 무상배급 정책과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쇼는 우민화를 위한 통치기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