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그간 정 회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왔던 사업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의 사퇴 배경으로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도 거론되면서 새 회장의 경영기조에 따라 포스코의 중점 사업들에 일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정 회장은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으로 철강산업이 유례없는 불황에 시달리자, 기존 철강업에서 에너지·신소재 사업을 포함하는 종합소재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의 '비전 2020'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본업인 철강을 중심으로 에너지, 건설 등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온 상황.
또 인도네시아 국영철강사인 크라카타우스틸(KRAKATAU STEEL)과 함께 현지에 크라카타우포스코 제철소를 건설, 다음달 1단계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곳은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고로제철소로, 정 회장은 이를 통해 글로벌 철강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동남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그림을 그려왔다.
포스코는 크라카타우스틸과 추가로 300만t 규모의 2단계 일관제철소를 지을 수 있는 옵션 계약을 맺었는데,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회장은 포스코가 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설, 비전 2020 등을 애정을 갖고 추진해 왔다"며 "특히 세계철강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글로벌 철강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에도 역점을 둬 온 상황인데 갑작스런 사퇴로 일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기 회장으로 누가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철강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포스코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들을 차질없이 이끌어 주기 만을 기대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정 회장의 사퇴 배경에는 정치적 외압 외에도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론'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이 '비전 2020' 아래 추진해 온 무리한 투자가 포스코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
실제로 철강경기가 호황이었던 2000년대, 포스코는 무려 20%대라는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최근 수년간 이어진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 결과 포스코는 분기 영업이익 기준 '1조 클럽' 진입에 5분기 연속 실패하는 결과를 냈다.
이러한 실적 악화의 배경에는 철강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정 회장이 추진한 무리한 계열사 확장도 무관치 않다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정 회장은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신성장동력을 발굴을 위해 '몸집 불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결과 2007년 23개였던 포스코의 계열사는 지난해 70개까지 늘어났다. 국내 대기업들 중 계열사를 가장 많이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계열사가 늘어날 수록 오히려 수익성이 급감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적인 철강 업황의 부진과 함께 계열사 확장 과정에서 부실 자회사까지 떠안게 되면서 포스코 전체의 재무상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포스코는 현재 계열사를 대폭 줄이는 구조재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말까지 모두 30여개의 계열사를 축소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인데, 11월 기준 계열사 수는 여전히 목표치에 크게 미달하는 52개(포스코 포함)에 달한다.
한편 정준양 회장은 1972년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75년 포항제철에 입사한 뒤 38년간 철강산업에 몸담아 왔다. 포스코에서는 제강부장, 생산기술부장, 기술연구소 부소장, EU 사무소장, 광양제철소장 등을 거친 뒤 2007년 대표이사 사장(생산기술부문장)직에 올랐다. 2009년부터는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아왔다.
정 회장은 이날 사의를 표명하면서 "외압이나 외풍은 없었으며, 거취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와 소문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이사회에서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