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바뀐다.
오른쪽에만 진 쌍꺼풀이 도드라지도록 눈을 크게 뜨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는다. 때로는 진지한 얼굴로 단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줘 말한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정우(33)는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았으며, 솔직하지만 겸손했다. "단역을 할 때 부터 몸에 밴 습관들이 있다. 열아홉 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막내라 90도 인사가 당연했다. 지금은 인사를 통해서라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결국은 내 마음 편하자고 인사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부하 7' '양아치' '청년신도 2' '빠박이' 등 단역과 조연을 거쳐 이 자리에 서는 데 15년이 걸렸다. 힘든 시기였지만 배우로서의 가치관을 지키느라 속도는 더뎠다. 지난해 '2013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최고다 이순신'으로 신인상을 받고 "이 작품 저 작품 가릴 처지가 아닌데 한때 고집을 피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작품 선택에 신중한 편이다. 그렇기에 올인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 한 두 작품은 아닌 것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스스로 힘든 싸움을 택했다. "작품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고 촬영이라는 걸 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분이 하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해도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은 눈에 들지 않았다. 열정을 다할 만한 작품을 만나고 싶어 고사하기도 했다. 작품을 가릴 형편이 아닌데 고집을 피웠던 것 같다. 주제넘은 생각일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주위에서 '신인 주제에 작품을 가리는지…'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입장인데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신인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그렇게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 가족과 이제껏 함께 해온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는 마음이다. "솔직히 그 시간을 가장 힘겹게 보낸 사람은 나였다"는 말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4'는 더욱 값지다. 지난해 12월까지 방송된 이 드라마는 '조연' 정우를 '주연'을 넘어 스타의 위치에 올려놨다. "이번 작품이 의미가 크다. 나를 믿어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 같아 기분도 좋다"며 웃었다.
'응답하라 1994'를 연출한 신원호 PD는 영화 '바람'을 보고 정우를 점찍었다. '응답하라 1997' 때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정우의 군 복무로 불발됐다. 그리고 1년 후 두 사람은 재회했다. 정우는 "시즌1에 대한 신뢰가 51%였다. 그리고 PD님과 작가님을 보니 너무 좋아 보였다. 확신이 있었다. 드라마가 잘 안 돼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신뢰했다.
"'응칠'으로 인한 후광보다는 연기할 수 있는 놀이터가 잘 마련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들끼리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고 안전했다. 그 앞에서 PD님이 우리를 지켜봐 줬다. 간혹 그 공간을 벗어나는 친구들에게는 방향성을 지시해줬다. 즐겁고 편안하고 까불며 놀 수 있게 간섭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테두리만 쳐주고 풀어주는 걸 재미있어한다."
작업은 최고였다. 정우는 "베스트? 아니 그 이상이었다"며 대만족을 표했다. "결과에 대한 생각이 아니다. 현장에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 작품이 안 됐다면 배우 탓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제작진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쓰레기'에 대해서도 그렇다. "고아라를 처음 보는 순간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 안 예뻐 보이려고 옷도 덜 예쁘게 입고 머리도 잘랐지만, 여전히 만화책에 있는 아이 같았다. 나랑 있으면 '미녀와 야수' 느낌? 그래도 야수는 나중에 왕자로 변하니까"라며 즐거워했다. "이우정 작가님과 신원호 PD님이 나를 왕자님으로 만들어줬다. '쓰레기'라고 했을 때도 캐릭터가 좋을 것 같은 감이 왔다. 정말 모든 좋은 걸 다 갖다 입혀 줬다."
지난해 12월28일 종방,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이곳저곳에서 주연 배우들을 찾으며 '응사특집'을 편성했다. 숨 돌릴 시간 없이 빠듯한 일정이지만 정우의 차기작을 두고 온갖 억측이 쏟아져 나왔다. 정우는 "드라마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됐다. 다른 작품을 결정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운이 잘 맞아서 좋은 작품을 빨리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신원호 PD님이 유명세를 치른다고 말씀하더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많이 힘들다.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며 힘겨워했다. "인기도 아직은 버겁다. 대중이 알아봐 주는 게 갑자기 확산되니 당황스러움이 크다. 조금씩 극복하고 소통하는 걸 즐기려고 한다. 그래도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인사했다.
정우는 "이렇게들 좋아해 주는 게 납득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날 좋아해 주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이런 사랑을 보내주고 좋아해주는데 어떻게 소홀히 인사를 할 수 있겠느냐. 당연한 거다"는 말에서는 진심이 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