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팝스타 비욘세(33)는 개별 가수의 이름이 아닌 대명사처럼 됐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예쁜 데다가 섹시하기까지 한 여자 가수를 대변한다. '제2의 비욘세' '한국의 비욘세' 등 그녀의 이름은 온갖 수식을 부른다. 물론, 원본의 아우라와는 비교조차 무의미하다.
비욘세가 지난달 13일 아이튠스에 발표한 정규 5집 '비욘세'는 그녀가 왜 비욘세인지를 증명하는 앨범이다. 타이틀부터 비욘세, 자신의 이름만 내세웠다.
앨범에는 14곡이 담겼다. 타이틀곡으로 몽환적이고 웅장한 '엑스오(XO)', 드라마틱한 전개의 '프리티 허츠(Pretty Hurts)', 남편인 힙합스타 제이Z(45)가 피처링한 '드렁크 인 러브', 캐나다 팝스타 드레이크(28)가 함께 부른 '마인', 미국 팝스타 프랭크 오션(27)이 힘을 실은 '슈퍼 파워', 일렉트로닉과 힙합이 절묘하게 조화된 '파티션', 제이Z·비욘세의 딸인 블루 아이비 카터(2)의 목소리를 담은 '블루' 등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앨범에 뮤직비디오가 17편 실렸다는 점이다. '비주얼 앨범'을 표방한만큼 14곡에 모두 뮤직비디오가 따른다. 여기에 '고스트', '욘세', 보너스 영상 '그론 우먼' 등 3편이 추가됐다. 대부분의 뮤직비디오에는 다른 감독이 참여했고, 비욘세 본인도 '젤러스(Jealous)', '로켓', '헤븐' '블루' 등 4편에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니뮤직 주최로 24일 밤 서울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열린 '비욘세' 뮤직비디오 전편 시사회에서 감상한 17편의 뮤직비디오는 흠 잡을 작품이 없을만큼 모두 완성도가 뛰어났다.
미인대회를 배경으로 외모 지상주의 세태를 꼬집는 '프리티 허츠', 호텔을 배경으로 팀 버턴(56)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로테스크 '혼티드(Haunted)', 롤러스케이트장을 배경으로 여성들이 군무를 추는 '블로(Blow)', 현대무용과 예술사진이 혼재된 '마인', 빈민촌의 여성들을 주축이 돼 공권력과 폭력에 대응하는 '슈퍼파워' 등 뮤직비디오마다 메시지와 스타일이 분명하다.
지난 1년 반 동안 비욘세가 월드투어 '미시즈 카터 쇼 월드투어'를 도는 동안 촬영했다. 뉴욕 인근 코니 아일랜드, 브라질 해변 등이 배경이다.
특히 성적인 은유가 넘치는 '로켓' 등 약 절반 정도가 19세 미만 관람불가일 정도로 뮤직비디오 속 비욘세의 모습은 섹시함을 넘어 관능적이다. 야하다기보다는 당당함으로 읽힌다.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자신감을 가지고 거리낌 없이 선보이는 모습은 남성을 유혹한다기보다는 자기애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걸스데이' '달샤벳' 'AOA' '레인보우블랙' 등 최근 한국 걸그룹의 노출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더 뚜렷해진다. 이들 걸그룹의 노출은 여성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노골적으로 남성을 노렸다. 상업적인 냄새를 물씬 풍긴다. 비욘세의 노출은 여성들이 더 좋아할 만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된 당당함,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매혹되기에 충분한 요소다.
그런데 이 섹시함은 수많은 비욘세의 모습 중 하나다. 이번 앨범에는 섹스뿐 아니라 플라토닉 러브, 행복, 두려움, 자녀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가수 비욘세를 넘어 여성 비욘세로 통하는 지점이다.
비욘세는 블루 아이비를 얻기 전, 유산한 아픔을 지난해 초 고백했다. 2011년 정규 4집을 발매한 이후 다양한 경험을 한 그녀의 성숙함이 이번 앨범에 자연스레 녹아난 것이다. 딸 아이비 카터의 목소리와 모습이 등장하는 '블루' 트랙과 뮤직비디오에서는 어느덧 엄마가 된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인 인식도 높아졌다. '예쁜 상처'라는 뜻의 제목에서 연상되듯 '프리티 허츠'에서는 약물 사용과 수술, 자신의 억제로 이뤄지는 현대의 미인 기준을 풍자하고, '플로리스(***Flawless)'에는 나이지리아의 목소리로 통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37)의 연설이 삽입됐다.
비욘세는 그렇게 5집 '비욘세'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톱스타이기 전에 자신 역시 이 시대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당당하게 내보이라고 권한다. 뮤직비디오는 이 다양한 모습을 분명하게 하는 부연설명으로 음반의 트랙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비욘세는 '나는 음악을 본다'라는 뜻의 '아이 시 뮤직(I see music)'이라는 말로 이번 앨범의 제작 취지를 밝혔다. "나는 음악을 본다. 그저 듣는 것을 넘어선다"면서 "만약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게 되면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이나 감정들, 어린 시절의 추억, 삶에 대한 생각, 나의 꿈, 환상 등과 연관된 일련의 이미지들을 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음악과 연결됐다"고 덧붙였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탄탄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다. 이전 앨범보다 일렉트로닉 색깔이 두드러졌다. 처음에는 다소 귀에 감기지 않았는데 '블로'를 비롯해 '파티션' 등 일렉트로닉이 자연스레 스며든 트랙은 몇 차례 듣다보면, 그 촘촘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55)씨는 "디지털 싱글 시대에 앨범을 내놓은 것 자체가 진보적인데 거기에 뮤직비디오까지 더했다"면서 "트렌드세터로서 자신의 지위를 분명히 했다. 상투성을 벗어던지고 다르게 하려는 자세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고 전했다. "더구나 앨범의 미학이 견고하다. 덩어리로서의 음악을 생각하는데 일조했다"면서 "팝 역사에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평했다.
임 평론가는 지금 모든 여성 솔로 가수의 판단 기준은 비욘세라고 짚었다. "가창력과 댄싱 파워, 비주얼, 의식 등을 종합할 때 비욘세를 따라갈 만한 여성 가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은 또 발표 전에 아무런 홍보 활동이나 예고가 없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발표 전부터 프로모션을 벌인 기존의 앨범들과 달리 예고 없이 '깜짝' 선보인 음반이다. 앨범유통사 소니뮤직은 "보통 가수의 앨범은 음반사가 미리 알고 준비하는데 이번 경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팬들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비욘세의 의지와 수록곡, 뮤직비디오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해 이렇게 진행했다"고 알렸다.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다. 음악과 아티스트, 팬 사이에는 거쳐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면서 이 같은 방식을 비욘세가 고집했지만, 그녀라서 가능한 발매 방식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음반 발매 전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아 한번의 폭발적인 호응을 노리는 수많은 가수들의 힘을 빼 놓은 셈이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을 고집하는 그녀의 고민과 노력은 타성에 젖어 있는 다른 뮤지션들을 뒤흔들어놓은 것에 틀림없다.
팬들은 호응으로 화답했다. 발매 즉시 104개국 아이튠스 차트 1위를 차지했다. 3일 만에 약 83만장, 1주 만에 100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이튠스 사상 최단 기간 최다 판매 앨범이다.
지난달 28일자 '빌보드'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서는 1위로 데뷔했다. 이에 따라 데뷔 앨범부터 5장의 모든 앨범을 빌보드200 1위로 데뷔시킨 최초의 여성 뮤지션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앞서 비욘세가 발표한 '데인저러스리 인 러브'(Dangerously In Love·2003), '비데이'(B'Day·2006), '아이 앰…사샤 피어스'(Sasha Fierce·2008), '4'(2011)가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