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앞 인디음악이 반향을 일으킨 것은 주류 대중음악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그러나 이 신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정규 1집 '어라이벌(Arrival)'을 통해 단숨에 인디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싱어송라이터 프롬(29·이유진)은 그 흐름에 비껴서있다. 기존의 홍대앞 짙은 감수성을 잇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날것의 거친 음질인 로파이 사운드로 빈티지 느낌을 풍기며 차별화한다. 제대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어 코드진행이 독특한데 그래서 신선하다.
프롬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얼떨떨하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어색해했다.
총 10곡이 실린 앨범의 타이틀곡은 '좋아해'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판단, 결정했다. 그럼에도 소박하지만 풍성함을 안기는 악기 편성은 새롭다.
부산 출신인 그녀가 처음 음악을 하기 위해 상경한 후의 심정을 담은 '도착', 자아가 강한 마음이 흔들리는 것에 대해 노래한 '마음셔틀금지'에도 프롬만의 인장이 박혔다. 2011년 초벌을 내놓은 곡으로 쓸쓸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달, 말하다', 브릿팝 풍으로 드라마틱한 전개가 인상적인 '불꽃놀이'도 빼놓을 수 없는 트랙들이다.
'달, 말하다'와 '불꽃놀이'는 최근 곡들과 괴리가 있어 이번 음반에서 제외하려 했다. 하지만 이 두 곡으로 앨범이 한층 풍부해졌고, '프롬다움'이 더해졌다. 특히 '불꽃놀이'는 그녀의 지인이 프롬을 떠올리면서 엽서에 그린 불꽃놀이 그림과 쓴 글귀를 바탕으로 한 노래라 의미가 크다.
"친한 언니가 제가 불꽃놀이 중 마지막 불꽃 같다고 했어요. 빨리 터지지는 않지만, 가장 나중에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이요. 중간에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언니의 말이 큰 힘이 됐어요. 그래서 '불꽃놀이'에 남다른 애착이 있어요."
무엇보다 이번 앨범 수록곡 모두를 작사·작곡·편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맡았다는 점이 놀랍다. "어렵지 않게 만들었어요. 코드나 화성도 잘 모르고, 막 만든거죠. 프로듀싱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제가 한 것이 프로듀싱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죠. 호호호. 덕분에 자신감이 좀 붙었어요."
스마트폰 CF 음악을 작업한 미국 프로듀서 앤디 로젤룬드가 편곡에 힘을 실어줬다. 2000년대 초 활약한 한국 밴드 '조이박스'의 베이시스트 출신인 그는 베이스뿐 아니라 트럼펫, 만돌린 등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덕분에 곡들에 다양한 결이 생겼다.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곡들을 매만져줘 감사해요. 제 곡 듣고,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배철수(61), 장기하(32) 같은 선배 뮤지션들에게도 좋은 평을 얻었다. "전형적인 부분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좋게 봐준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제가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고, 사실 음감도 뛰어나지 않아요. 잘 다루는 악기도 없죠." 이번 앨범에 대한 좋은 평가에 '당혹'스러워 하는 이유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노래를 좀 더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그래도 음악은 계속 배워야 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비교적 뒤늦게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1년 10월 쇼머스트 옴니버스에 실린 첫 싱글 '마중가는 길'로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알렸고, 2012년 5월 데뷔 싱글 '사랑 아니었나'를 발표했다. 프롬(Fromm)은 독일식 이름으로 '자신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인디 밴드 '피터팬 콤플렉스'의 전지한이 유럽까지 뻗어나가라는 의미로 제안했다.
캐나다 가수 파이스트(38), 러시아 가수 레지나 스펙터(34) 등 역시 범상치 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영향을 받았다. "잡음도 개의치 않은 자연스러움을 즐기는 태도가 너무 좋다"며 눈을 빛냈다. 싱어송라이터 이상은(44)처럼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자신이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어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마음이다.
프롬의 또 다른 장점은 목소리다. 여성보컬로서는 비교적 저음으로 다소 굵다. 이 때문에 고음에서 날이 서지 않고, 저음에서는 가볍지 않다. "처음에는 여자치고 굵고 저음인 것이 콤플렉스였어요. 일부러 꾸며서 노래하기도 했는데 본래의 목소리를 좋게 들어주시니 감사하죠."
2012년 EBS '헬로루키'로 선정됐다. 이후 '지산 록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카운트다운 판타지' '서울 재즈 페스티벌' 등 여러 음악 축제무대에 오르면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페스티벌들에 출연한 이력 때문에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분들이 많아요. 제게는 참 운 좋은 기회였죠. 올해도 많은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싶어요."
이제는 진부해진 수식이지만, 프롬 역시 떠오르는 '홍대 여신' 중 한 명이다. 좀 더 새로운 표현으로 혹자는 홍대 여신 2막을 열었다고 한다. 여러 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는 언뜻 봐도 미인이다. 그런데 얼굴보다 음악성으로 더 부각됐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말랑말랑하기보다는 빈티지한 사운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점이 그런 부분을 도드라지게 했다.
"나쁜 의미는 아니잖아요. 대중이 안 좋게 보더라도 저를 알리기 위한 나름의 배려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나중에 저만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생겼으면 해요. 제가 거기에 걸맞는 음악을 해나가야겠죠."
인기 덕분에 프롬이 2월15일 서울 홍대앞 '벨로주'에서 펼치는 첫 단독 콘서트 '웨어 아 유 프롬(Where Are You Fromm?)'는 매진됐다.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는게 벌써 매진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저를 보러 와주는 거니까 팬들에게 선물 같은 공연이 됐으면 해요. 그간 쌓아둔 곡들도 처음 공개하고요. 여러 이벤트를 고민 중이에요."
음악을 기반으로 여러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다. "동화를 쓰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고, 영화음악도 하고 싶고요."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이다. 모든 개별은 다 특별하기 때문에, 가장 자신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다.
"조금만 똑같은 일을 반복해도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박봉이라도 창조적인 일을 하면 재미있었고요. 그러면서 새로운 저를 발견하는 거죠. 음악은 그간 도모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저를 위로해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면 제 노래를 듣는 분들도 위로를 받을 것 같아요. 저도 다시 그런 분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그렇게 많은 분들과 소통해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