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정원 "슈베르트 소나타는 숨겨놓은 보물상자"

  • 등록 2015.09.08 15: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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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곡 전곡 연주·녹음 도전 중"

피아니스트 김정원(40·경희대 음대 교수)이 8일 오전 서울 일신홀에서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16번 A단조 D. 845'는 본래 곡이 가진 묵직함과 함께 서정성이 묻어나왔다. 

김정원이 들려주는 음 사이사이의 감성은 청아한 타건 소리와 함께 그윽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전달됐다. 세련됨은 여전했으나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졌다. 

이날 연주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에서 '중요한 일부'로 바뀐 것 같다"며 "그래서 좀 편안해진 것 같다"고 말한 그대로였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와 프랑스 파리 고등 국립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치고 빈 심포니, 런던 심포니, 체코 필하모닉 등과 협업하며 점차 깊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는 김정원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21곡) 연주와 녹음에 도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정원은 10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의 첫 음반을 내놓는다. 지난해 8월과 올해 3월 두 번의 공연을 통해 들려준 총 6곡을 3장의 음반(3CD)에 나눠 담았다.

슈베르트 소나타 중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손꼽히는 '피아노 소나타 19번 C장조 D. 958', 그리고 대비되는 장조의 소나타인 '5번 A플랫장조 D. 557'과 '13번 A장조 D. 664',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 중 가장 그다운 특성이 묻어나는 '피아노 소나타 18번 G장조 D. 894', 이 곡과 비슷한 색깔의 '1번 E장조 D. 157'과 '7번 E플랫장조 D. 568'이 그것이다. 

12일 오후 8시에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소나타 전곡 시리즈 세 번째 공연을 이어간다. 이날 들려준 '피아노 소나타 16번 A단조 D. 845'를 마지막곡으로 하고 앞에 '피아노 소나타 6번 E단조 D. 566',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4번 A단조 D. 537'를 들려준다. 

네 번째 공연과 두 번째 음반은 내년 5월 발매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5번째 공연과 세 번째 음반은 2017년 하반기 발매 계획이다. 

-먼저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소감이 어떤가요? 

"2년 째 작업 중인데 아직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더 많이 남아 있죠. 그로 인해 중압감을 느껴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 중압감에서 벗어납니다. 피아노 앞이 아닌 곳에서도 이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살이 빠지죠. 

-슈베르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적부터 빈(15세 때 빈으로 유학을 갔다)에서 살아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작곡가에요. 그곳 자취방 근처에 슈베르트의 생가가 있었죠. 팍팍하고 힘들 때라 그가 위로처럼, 친구처럼 다가왔어요. 독일어를 못할 때였지만 왔다갔가 하면서 생가를 자주 봐 슈베르트와 교감을 느꼈죠. 그러나 막상 음악 공부를 시작한 뒤엔 슈베르트를 연주해 보지 못했어요. 학생 때는 기교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느라.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슈베르트르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자리잡았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21곡)은 어떤 곡입니까?

"베토벤의 32개 소나타처럼 낱낱이 밝혀지지 않은 느낌이에요.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죠. 후기 소나타 몇개만 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초기 작품은 아예 들어보지 못한 것도 많이 있어요. 숨겨놓은 비밀 상자처럼 언젠가 열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하게 됐죠. 세상에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있지만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잘 안 하죠."

-어떤 것이 어렵나요?

"베토벤 소나타처럼 한곡 한곡 모두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어요. 600여 곡이 넘는 가곡을 써서 선율적인 아이디어는 기가 막히지만 전문 피아니스트처럼 작곡을 하지 않아 서툴러 보이기도 해요. 연주가 까다롭고 불편한 부분도 있어 고통스럽죠. 근데 아무도 어려움을 몰라주고요(웃음).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해볼만 해요. 어떤 날은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어 건반에 손도 못 올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해요. 그런 시간에는 음반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죠. 그러면 피아니스트로서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한 단계 올라섰구나라는 생각. 몰랐던 것을 알게 됐구나라는 느낌이 들죠. 이번 슈베르트 연주는 제 음악 인생에서 하나의 여정이에요."

-슈베르트를 연주해야겠다는 결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10년 전 쯤에 그 별병이 없어졌는데 한 때 '쇼팽 스페셜리스트'라 불렸어요. 그렇게 고민하지 않고 느낀대로 연주할 때 공감을 해주는 것이 쇼팽이었죠.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 치우쳤죠. 사실 작곡가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도 아니고 무대에서 연주하는 퍼포머인데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적으로 진한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를 20~30대에 하다 보니 조미료가 없는 원재료만으로 음식을 해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2009년 25년에 걸친 빈의 삶을 정리하고 들어왔는데 향수를 느꼈죠. 그 향수를 달래는데 가장 도움을 준 게 슈베르트고요."

-지금까지 연주자로서 어떤 변화를 겪어오셨나요? 

"대학(빈 국립음대) 졸업 연주 때 지도 교수님이시던 미카엘 크리스트 교수님에게 들은 악평이 있어요. 이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서 만족하며 의기양양하게 교수님을 뵈러 갔는데 '네 연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원만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주할 때 네가 안 보이게 하라. 음악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라'고 하셨죠. 그 때는 점수를 잘 받았으니 교만하지 말라고 해주시는 말로만 이해했어요. 근데 지금은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죠. 무엇보다 청중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참을 수 있게 됐죠. 공연을 많이 하다보면 지루한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스킬이 늘기 마련이죠. 근데 그런 것을 즉흥적으로 쓰다보면 음악 연주가 훼손되죠. 몇달 준비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데 그 욕심(스킬을 버리려는)을 잘 못버려요. 지금은 조금 무대 위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음악이 우선이었어요. 여자친구에게도 음악이 우선이라고 괜한 쓸데 없는 이야기도 하고(웃음). 이제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에서 '중요한 일부'로 바뀐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성격적으로 꼼꼼한 편이라 음악적으로 들여다 보고 전전긍긍했는데, 주변에 제 아내 같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 닮아가면서 훨씬 더 사람답게 됐어요. 완벽하지 않아야 더 아름답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죠. 그래서 이번 음반에 더 여백이 생긴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이번에 슈베르트 전곡을 순서대로 연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슈베르트는 초기, 중기, 후기에서 형식의 변화가 생겨요. 작곡 능력 자체도 성장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죠. 처음에는 고전 모방인데 아이디어는 많지만, 모방의 테크닉은 어설프고 귀여운 부분이 있죠. 중기에는 그것을 녹여 좋은 작품을 만들었고요. 후기에는 자신의 철학과 이야기가 녹아들어 갔습니다. 제 연주를 하루만 보시는 분들도 초기, 예쁜중기, 묵직한 후기 작품을 모두 감상하셨으면 했어요. 후기가 내용도 커 메인 작품으로 정하고 다섯 공연의 마지막에 배치했죠. 워낙 인생을 짧게 살아서 후기라고 해봐자 30대 후반이에요. 작품번호가 5로 시작하는 것을 중기로 보고, 1악장과 끝악장하고 안 맞는 것이 초기 소나타, 후기는 마지막 세 소나타지만 '피아노 소나타 16번 A단조 D. 845', '피아노 소나타 18번 G장조 D. 894'도 후기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서 후기 다섯개에 포함했죠."

-국내 클래식계에서 처음으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주인공인데요(웃음). 이후 디토 앙상블 등 클래식계에서 인기를 끈 젊은 스타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디토 후배들 때문에 소녀팬들이 줄기도 한 것 같은데요(웃음).

"소녀팬들이 줄어든 대신에 더 깊이 있는 아줌마 팬들이 계세요(웃음). 스타, 팬 문화가 극적으로만 가면 우려할 일이지만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힘이 되죠. 연주자로서는 감사한 일이죠.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반짝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연륜을 쌓아가는지 지켜봐주시는 팬들이 있었으면 해요."

-이전 작업과 이번 작업의 차이점은?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싶으신가요?

"예전에는 유럽 여행에서 여권에 도장만 받고 왔다면 이번에는 살다온 차이라고 할까요? 막연하게 아는 슈베르트가 아닌 그의 성격 하나 하나까지 보일 정도로 깊게 들어갔죠. 이제 다른 음악도 깊게 파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춘옥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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