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의 좌완 에이스 김광현(26)도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마음에 품고 공을 뿌렸다. 안산 출신이기에 슬픔이 더한 김광현이다.
김광현은 1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해 SK의 11-0 대승에 앞장섰다.
김광현과 양현종(26·KIA)의 왼손 에이스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은 경기.
그러나 김광현의 마음 속에는 '에이스 맞대결'이라는 단어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해 시끄러운 응원전을 자제하고 있어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경기에서 김광현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을 품고 공을 뿌렸다.
안산에서 초·중·고교(덕성초·안산중앙중·안산공고)를 모두 졸업한 김광현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위기 상황을 벗어나거나, 삼진을 잡았을 때 누구보다 큰 세러모니를 하던 김광현이지만 이날은 큰 제스처가 눈에 띄지 않았다. 1-0으로 앞선 6회말 2사 1,2루에서 이재원의 2타점 적시 3루타가 터졌을 때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 것이 그가 표현한 기쁨의 전부였다.
김광현은 "나는 안산 출신이다. 그곳에서 자랐다.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배 안이 얼마나 어둡고, 춥겠는가. 밤에 불이 꺼진 거실도 무서운데 배 안에 희생자가 있다면 정말 춥고 힘들 것 같다.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의 큰 승리에도 좀처럼 기쁜 표정을 짓지 못한 김광현은 "세러모니도 자제했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고 전했다.
그는 "6회에 세러모니를 했지만 나도 모르게 한 것이다. 손을 들고는 아차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손을 든 뒤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곧바로 손을 내렸다.
김광현은 이날 투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볼넷도 적었다. 2S0B 이후 승부도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양현종은 볼넷이 하나도 없지 않았나. 볼넷은 더 줄여야할 것 같다. 선두타자 초구도 더 신경써야할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김광현은 "양현종과 에이스 맞대결이라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상대 투수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타자 중심으로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공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공만 던지면 자신있게 승부할 수 있다. 타자들이 바깥쪽 공을 잘 친다고 몸쪽 승부를 하는 것은 나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며 "내가 부담스러우면 볼이 많다. (정)상호 형에게 자신있는 공을 던질테니 좋은 공으로 사인을 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비시즌 동안 체인지업을 가다듬은 김광현은 "오늘 위기상황에 잘 먹혀서 삼진도 잡을 수 있었다.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6회 (나)지완 형을 삼진으로 잡을 때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면서도 스윙이 나와 만족스럽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광현은 "다음에 양현종을 만나면 이길수도, 질 수도 있다. 시즌 중 일부였을 뿐"이라며 "오늘 잘못된 투구를 분석해 다음 경기에 잘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SK의 이만수(56) 감독은 "양 팀에 에이스끼리 좋은 경기를 펼쳤고, 멋진 경기였다. 김광현이 에이스답게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그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