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의 하나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신이 무대로 내려와 모든 걸 해결한다'는 뜻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얽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신이 등장, 초자연적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말로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TV드라마에서 사건이 전혀 개연성 없이 이어질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잘못 도입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SBS TV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 14일'이 그렇다. 이 드라마에서 '신'이 준 선물은 엄마가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는 14일의 시간이 아니다.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작가가 무자비하게 내려준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드라마는 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시사프로그램 방송작가가 딸을 구하려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운명을 바꾼다는 이야기다. 타임워프 소재에 살인, 유괴 등 흥미를 유발하는 스릴러 장르를 적절히 버무렸다.
2012년 MBC와 2013년 SBS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조승우·이보영이 만들어내는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전작에서 볼 수 없던 이보영의 폭발력과 조승우의 능청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는 극의 완급을 탁월하게 조절한다. 범인으로 출연한 강성진과 오태경도 짧은 시간 안에 '신 스틸러'로 주목받았다.
문제는 1등급 소재와 재료를 뒷받침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스토리다. 탄탄하고 치밀한 극본이 생명인 스릴러 장르에서 계속되는 우연으로 어부지리식 범인색출이 이뤄지고 있다. 배우들의 호연과 장르의 신선함으로 포장됐던 이야기의 이러한 공백이 2회부터 서서히 나타나더니 5~6회에 들어 큰 구멍을 드러냈다.
극의 앞부분에서는 딸이 유괴당하기 14일 전으로 타임워프된 엄마 '김수현'(이보영)이 함께 시간 여행자가 된 '기동찬'(조승우)과 연쇄살인범인 첫 번째 용의자 '차봉섭'(강성진)을 추적하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뿐이다.
딸 '샛별'(김유빈)을 납치한 범인이라고 말하며 2억원을 요구하는 남자에게 엄마 김수현이 맞고 휘둘리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것은 억지스러워도 '대한민국 아줌마 만세'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추락 위기에 놓인 차봉섭을 연약한 여성이 한 손으로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물음표다.
차봉섭이 경찰에서 풀려나는 과정도 치밀하지 못하다. 양손에 수갑을 찬 차봉섭이 조사실로 들어온 중국집 배달원의 헐렁한 주머니에 때마침 자리한 휴대폰을 능숙하게 훔치는 장면은 허술하다. 훔친 전화기로 차봉섭은 화장실에서 김수현의 남편이자 인권변호사인 '한지훈'(김태우)에게 전화, 도움을 요청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사실 경찰은 증거를 제대로 찾지도 않았다. 김수현이 찌른 차봉섭 복부의 상처는 확인하지 않고 범인이 떠난 골목만 술래잡기하듯 뛰다 나타났을 뿐이다.
또 경찰은 분노한 김수현이 총을 들고 조사실로 돌진할 수 있도록 총알이 든 무기를 '쉽게 손닿을 수 있는' 테이블 위에 사뿐히 올려놓았다. 이처럼 경찰을 헐떡거리고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하는 드라마에 경찰서가 왜 촬영 협조를 해주는지 의문이다.
연쇄살인자 차봉섭을 구속할 중요한 증거가 되는 혈흔이 묻은 옷을 김수현이 발견한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차봉섭은 '미미'를 살해한 증거를 없애려고 의류수거함에서 꺼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자신의 옷은 김수현의 차 밑에 숨겼다. 김수현은 실수로 떨어뜨린 자동차 열쇠를 주우려다가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미미의 집에서 수색 중인 김수현이 손을 잘못 디뎌 찾게 된 모래시계 속 또 다른 증거를 손에 넣는 과정도 우연으로 얼버무렸다.
차봉섭이 죽고 제2의 용의자인 '문방구 아저씨'(오태경)로 넘어가는 과정도 기가 막히다. 김수현의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 나는 타이밍, 남편 컴퓨터에 때마침 온 범인의 e메일이 그렇다. 작가는 치밀한 극본 대신 우연으로 단서를 툭툭 던지고 있다.
스릴러에서 용의자를 지목하도록 깔아놓은 치밀한 복선은 사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극이 진행되며 쌓인 모든 증거와 단서가 폭발하는 순간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에서 우연이 반복되는 것도 인연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극본과 명배우의 '악연'이라는 오명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