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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정재영 연기가 아깝다, 영화 '플랜맨'

연예뉴스팀 기자  2014.01.03 09: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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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기상-밤새 흐트러진 침구 다림질-6시35분 샤워, 드라이어로 욕실 물기 제거-8시 옷 입기-8시30분 출근-8시42분 횡단보도 건너기….

도서관 사서인 '플랜맨' 정석(정재영)의 일상이다. 분 단위로 맞춰진 손목시계 알람은 항상 같은 시간 정석의 귀를 자극한다.

지각한 적 없고, 맡은 일에 성실하지만 동료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다른 사람과 접촉을 거부하는 결벽증 때문이다. 누군가 반가운 마음에 포옹이라도 하면, 집 앞에 있는 세탁소로 뛰어가 옷을 소독한다. 동료 직원이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 하나에도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예민하다.

낮 12시, 점심시간 알람이 울리자 하던 일을 멈춘다. 이어 12시15분, 짝사랑 상대인 지원(차예련)이 일하는 회사 근처 편의점으로 향한다. "머리카락이 빠져나온 적 없고 손톱이 긴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라고 감탄하는 여성이다. 비슷한 결벽증이어서 좋아했지만, 지원은 "나와 똑같은 남자는 싫다"며 정석을 거부한다.

이때 지원과 함께 편의점에서 일하는 소정(한지민)이 지원과 연결해 주겠다며 오작교를 자청한다. 인디밴드 보컬이기도 한 그녀가 내 건 조건은 '밴드 오디션' 참가다. 첫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제안을 받아들인 정석은 소정의 지시에 따라 난생 처음 무계획적인 삶을 살게 된다. 출근 8년7개월26일 만에 처음으로 지각까지 하면서.

영화 '플랜맨'(감독 성시흡)은 결벽·강박증을 지닌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고 점점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는 힐링 스토리다.

타이틀롤 정재영은 이 영화의 최대 볼거리다. 그의 말마따나 "오랜만에 피 한 방울 안 묻힌" 드라마지만, 소심하고 찌질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정석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코믹함부터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정연기는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를 극 속으로 끌고 와 정석과 비교할 정도다.

한지민은 청순가련을 벗고 발랄한 매력으로 호감을 산다. 인디 밴드 보컬로서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문제는 스토리다. '플랜맨'의 캐릭터를 받쳐줄 만한 스토리가 부족하다. 소정과의 만남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녀를 통해 정석의 삶이 변해갈 만한 동기가 석연치 않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 사이의 러브라인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느껴진다.

정석과 균형을 맞추려는 소정의 캐릭터는 독이 됐다. 철저히 플랜맨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보조하는 역할로 가거나, 아니면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을 맞춰 이야기를 배분했어야 한다. 소정에게 어설픈 이야기로 사연을 주려다 보니 두 인물이 한 작품에서 다른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후반부에 비밀스러웠던 정석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도 억지스럽다. 앞의 밝은 분위기를 한순간 전환하며 균형을 깨뜨린다. 정석이 스스로 지난 일을 고백하며 힐링해 나가는 과정도 후반부에 치우쳐 있다. 심지어 너무 급하게 진행돼 관객의 수긍을 얻을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정석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부연되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난삽하다. 많은 장치로 인해 '악마의 편집' 등 사회적 문제를 녹여넣으려 한 감독의 의도가 살아나지 않는다.

'플랜맨'의 개봉 시기는 탁월하다. 대규모로 개봉하는 유일한 한국영화이자 '수상한 그녀'(23일) '남자가 사랑할 때'(22일) 등보다 2주 정도 빠르다. 새해 아무 생각 없이 정재영이 명품 연기로 빚어낸 힐링 스토리를 원한다면 볼 만 하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