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코앞에 두고 원·엔 환율이 한 때 1000원대가 무너지자 원화강세 고착화 가능성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가 높아졌다.
산업계는 우선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고 무엇보다 원고(高)의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 하락으로 원화 강세 기조가 굳어지면 원·달러 환율도 불리하게 작동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당수 업종이 한계 환율에 내몰렸거나, 이미 환율 마지노선을 넘어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30일 엔·원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 개장 전 100엔당 1000원 선이 붕괴된 뒤 오전 9시 외환시장 개장 직후 100엔당 999.62원까지 하락했다. 엔·원 환율이 1000원 밑으로 하락한 것은 2008년 9월9일(장중 저가 996.68원)이후 5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 주 27일이후 105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내년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키로 한 반면, 일본은 돈 풀기 정책을 계속할 전망이라 달러는 강세, 엔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일단 외환시장 움직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원화강세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자·자동차·조선 등 주요 제조업체들은 엔저 현상이 이미 장기간 이어진데다 대일 수입의존도가 큰 소재·부품 부문에선 수출 경쟁력에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아 전체적인 여파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철강 업계는 ‘엔저 가속화’에 따른 일본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 강화에 맞서 복합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철강 주요시장으로 떠오른 동남아시아 지역 등 한·중·일 초경합 지역의 경우 엔저 현상이 일본 업체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원래 동남아 지역은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치열한 시장이었다”며 “엔저 현상에 따른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철강업계는 다만 일본 시장 내에서의 경쟁은 가격보다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들이기 때문에 엔저 현상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내수 시장이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 확대 기회도 엿보고 있다.
섬유업계는 원화강세 파고에 벌써 매출이 타격을 입는 등 피해가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매출의 70%를 수출에 의존하는 섬유업계는 달러당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매출액이 208억원 줄어든다. 수출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업계도 환율하락 속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빠르게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어 석유화학 기업들은 환율 움직임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국내 생산 물량의 60~70%가량을 수출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와 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매출이 2000억원가량 감소한다.
내년 예상환율을 1100원으로 설정한 현대·기아차는 환율하락 속도에 따라 내년 경영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등 전자업종도 수출 비중이 높아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내 생산 의존도가 높은 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백색가전 부문도 채산성이 급속히 나빠지는 것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근본 체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환율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며 “이미 달러, 유로화, 루블화, 위안화 등 다양한 통화로 결제를 하기 때문에 특정통화가 오르면 특정통화가 내리는 등 위험 분산 효과가 발생되고 있고, 지불할 통화와 들어오는 통화의 매칭을 최대한 맞추도록 자금운영을 해 환율의 영향을 최소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조선업계와 건설업계는 기본적으로 원·엔 환율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원화강세는 중소기업들에게 더욱 큰 어려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은 해외 생산기지를 갖추고 있고 환헤지 등으로 환손실을 어느 정도 막는 게 가능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이렇다 할 보호막이 없어 원고 직격탄에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채산성 유지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