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5일 검찰에 소환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와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이날 조응천 전 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문건 작성을 지시한 배경과 내용의 진위여부 및 근거, 문건 관리실태·유출의혹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날 오전 9시58분께 변호인 없이 홀로 검찰 청사에 들어선 조 전 비서관은 "주어진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 함께 일했던 부하 직원들에게 불법적인 일을 지시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며 "검찰 조사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성실하게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박관천 경정과 사전에 연락을 하고 왔느냐'는 질문에는 "연락하지 않았다. 내 통화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문건 내용의 6할 이상이 사실이라는 인터뷰 내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검찰에 올라가서 진술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을 생산한 박관천(48·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경정의 직속상관이다.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에게 정씨에 관한 동향 수집과 문건 작성을 지시한 뒤 관련 내용을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직접 서면 또는 구두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로 박 경정을 지목했고, 그의 직속상관이 조 전 비서관이란 점에서 문건의 작성부터 관리, 유출까지 조 전 비서관이 상당부분 개입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를 음해할 목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갖고 문건을 생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EG회장과는 친분이 두터운 반면, 정씨와 박 회장은 갈등 관계다.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달 29일과 30일 박 경정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거론하며 "자기(박 경정)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 그것을 밝히려면 윗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며 사실상 조 전 비서관을 겨눴다.
조 전 비서관은 정씨에 관한 동향 수집과 문건 생산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김기춘)비서실장이나 (홍경식)민정수석이 시킨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디"며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좀처럼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과 관련해선 청와대와 정씨는 "소설이나 낭설", "증권가 찌라시"라고 일축하고 있는 반면, 조 전 비서관은 문건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점을 들어 "(신빙성은)6할 이상이라고 본다. 6~7할쯤 되면 상부 보고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문건 유출 논란과 관련해선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 5월~6월 자체 조사에서 박 경정이 아닌 다른 제3의 인물을 지목한 보고가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검찰은 이날 조 전 비서관을 상대로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경위와 내용의 신빙성을 판단한 근거나 자료, 문건 유출을 공모·묵인했는지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 내용의 신빙성은 인정하면서도 문건 유출을 지시하거나 자신이 개입한 의혹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자정을 전후해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귀가시킬 예정이며 진술내용 등 조사결과를 검토한 후 재소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검찰은 또 이르면 다음 주중에 세계일보 기자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정윤회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어느정도 기초조사를 마친 뒤 정씨와 박 경정, 조 전 비서관 등을 대질신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박 경정이 경찰로 복귀하기 전 청와대 직원과 일반 공직자 감찰 문서, 대통령 친인척·측근 관련 문서로 구분해 따로 보관한 정황을 잡고, 문건 유출과 관련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경정이 무단 복사·반출한 청와대 문건이 100여건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박 경정은 전날 검찰조사에서 문건 내용을 알려준 정보원의 신원은 함구하면서도 문건은 유출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문건 유출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로부터 자체 감찰자료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 생산 및 열람·발송 대장 등 수사에 필요한 자료물을 지난 4일 임의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이와 별도로 박 경정이 검찰의 압수수색 전날 도봉경찰서 정보과 부하직원을 통해 컴퓨터의 일부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은 파일원본을 복구하는 대로 청와대 문건과 연관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검찰은 박 경정이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공무상비밀누설죄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박 경정의 직속상관인 조 전 비서관이 유출을 공모했거나 묵인·방조한 의혹이 짙어 조사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