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뜨거움과 차가움, 희극과 비극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비워야할 때와 채워야 할 때, 드러내야 할 때와 감춰야 할 때를 정확하게 계산한다.
송강호의 연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송강호가 훌륭한 연기를 했다"는 말에는 더 이상 정보값이 없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이 대배우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경지다. 그리고 2014년 영화상 시상식에서 송강호가 다시한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더라도, 그것이 게으른 판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결정임을 인정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고졸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한 '우석'(송강호)은 세무변호사로 성공한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어느날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신세를 진 국밥집 아주머니 '순애'(김영애)가 찾아온다. 평소 우석도 알고지내던 순애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것. 우석은 순애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를 도와주게 되고, 그곳에서 목격한 진우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우석은 결국 진우의 변호인으로 나선다.
'변호인'을 뛰어난 영화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단점이 분명한 영화다. 속물 세무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변모하는 감정 변화 과정이 매끈하지 못하고 급하다. 송우석의 성공기가 다소 길게 다뤄지다보니 극의 흐름상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번의 공판이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다뤄진 듯한 느낌도 든다. 재판 장면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보니 법정물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 또한 느슨해진다. 긴장감을 과한 감정으로 대신하려다 보니 작위적인 설정이 보이고, 몇몇 인물은 편의적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영화의 단점을 채워주는 것이 송강호라는 존재다. 이 영화를 통해 송강호의 새로운 얼굴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제까지 그가 했던 모든 연기를 이 영화에서 종합해 보여준다. 송강호가 놀라운 지점은 그 종합을 연기기술의 나열이 아닌 송우석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적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택했다는 점이다.
국밥집 아주머니와 장난치듯 이야기하다가 감격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장면에서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눈물이 나오려고 하자 울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이야기하는 법정 장면까지. 상대의 말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차갑게 반박하는 모습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뱉어대는 뜨거움까지. 그리고 특유의 생활연기는 또 어떻고. 송강호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송우석이라는 인물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변호인'은 노무현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의 영화다. 송강호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국밥집 아주머니 '순애'를 연기한 김영애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는 강한 어머니를 효과적으로 연기했다. 오달수는 역시 대체불가능한 연기를 하고, 임시완도 제 몫을 한다.
개봉 전부터 '노무현 헌정 영화'라는 논란을 빚으며 정치적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노무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무현의 삶 일부분을 떼와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 외에는. 노무현을 상상하며 감정을 이입할 관객도 있겠지만 그건 개인의 판단일 뿐이다. 세상에 무심했던 남자가 암울했던 시대를, 불의의 시대를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논란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 이야기, 딱 이 정도로만 이 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단, 서로에게 "안녕들 하냐"고 묻는 이 시기에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18일 전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