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공연계는 호황이었다. 뮤지컬계는 신작을 거듭 선보였고, 연극계에서도 대형 작품이 쏟아졌다. 클래식계에서는 거장들의 공연이 잇따랐다.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화제작 쏠림현상도 분명했다. 엠넷 '댄싱9' 등의 영향으로 현대무용이 급부상하기도 했다. 예술단체장 인선, 예술단체 편입 문제도 이슈로 떠올랐다.
◇뮤지컬, 대형 블록버스터의 격전
대형 블록버스터가 주축이 된 신작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1월 '레베카'를 시작으로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하이스쿨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보니 앤 클라이드' '위키드' '고스트' '카르멘' 등 해외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이 한국어 버전으로 초연했다. '그날들'과 '해를 품은 달' 같은 창작뮤지컬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도 눈에 띄었다. 태양의서커스의 '마이클 잭슨 이모털 월드투어', '아메리칸 이디엇'과 '애비뉴 큐', '맘마미아!' 등이 한국 관객들을 찾았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으로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미국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호령한 한 해이기도 했다. 1월 '지킬앤하이드'를 시작으로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 '스칼렛 핌퍼넬' '보니 앤 클라이드'에 이어 공연 중인 '카르멘'까지 무려 그의 작품 여섯 편이 올해 한국 무대에 올랐다. '지킬앤하이드'와 '몬테크리스토'를 제외하고 신작만 네 편이다. 가요풍의 음악이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는다는 평이다. 수익도 꽤 내고 있으나 한국에서만 인기인 그가 거품이라는 지적도 일부에서는 일고 있다.
내년 탄생 50주년을 맞는 가수 김광석의 히트곡들을 묶은 뮤지컬이 올해만 3편이나 선보였다. 장유정 연출의 '그날들', 소극장 어쿠스틱 뮤지컬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이미 공연했다. 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진이 연출하고 김준수·박건형이 주연을 맡은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가 개막했다.
K팝을 잇는 K뮤지컬, 즉 한류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 받은 해이기도 했다. 한류그룹 '2PM' 멤버 준케이 등이 출연한 뮤지컬 '삼총사'는 지난 8월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처드홀에서 25회 공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잭더리퍼'는 영상으로 편집돼 일본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국내 공연계의 큰손 CJ E&M 공연사업부문은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뮤즈와 손잡고 지난 4월 도쿄에 한국 뮤지컬 전용관인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를 개관, 현지를 공략 중이다.
중국 진출도 본격화됐다. 중국 문화부와 CJ E&M 공연사업부문이 중국에 공동 설립한 공연 제작 기업 '아주연창(상하이) 문화발전유한공사'가 제작한 뮤지컬 퍼포먼스 '공주의 만찬'이 지난 10월 중국 상하이 공무대에서 막을 올렸다. 앞서 국산 창작뮤지컬 '김종욱찾기'의 중국 라이선스 버전인 뮤지컬 '슌자오추리엔'(첫사랑 찾기)이 상하이 모리화 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한국의 투자배급사 뮤지컬서비스는 중국 4개 도시에서 10회 공연하는 '광화문연가'의 투어를 성료했다. 중국의 중국국제연출극원연맹, 항저우극원과 이 작품의 내년 중국 투어에 대한 협약도 맺은 상태다. 뮤지컬서비스는 '브레멘 음악대' 등의 작품도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급망과 기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충무아트홀 '뮤지컬하우스 블랙&블루' 등 창작뮤지컬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도 활성화됐다.
◇연극, 국립극장의 선전과 정치색 주목
두 번째 국립레퍼토리시즌을 성황리에 진행 중인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선전이 돋보였다. 특히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을 연출가 한태숙씨와 작가 고연옥씨가 재해석한 연극 '단테의 신곡'은 갈채를 받았다. 명동예술극장도 이선균·전혜진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주연으로 나선 연극 '러브 러브 러브'로 주목 받았다.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의 봄 페스티벌 '국가보안법', 국립극단의 '알리바이 연대기', 명계남이 출연한 연극 '천안함 랩소디' 등 정치·사회에 대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낸 연극도 관심을 끌었다. 정치적인 풍자 강도가 높았던 국립극단의 '개구리'와 '구름'은 정치색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3월에는 '지하철 1호선'의 공연장으로 유명한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이 약 1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같은 달에는 연극 '에쿠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배우 강태기가 대학로와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남편을 도와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린 연극계 스타 윤석화의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8월 공연이 취소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클래식, 거장들의 향연
새해 벽두부터 거장들의 내한이 잇따랐다. 주민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신년 갈라콘서트를 시작으로 로린 마젤은 시카고 심포니와 뮌헨 필하모닉를 이끌고 2차례나 내한했다.
베르나르트 하이딩크와 런던 심포니, 샤를 뒤투아와 로열 필하모닉,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필 하모닉, 앤드루 데이비스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이 연달아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클래식 팬들이 이들 무대로 몰리는 바람에 중소 규모의 공연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을 속속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바그너 최후의 악극인 오페라 '파르지팔' 초연은 무려 5시간35분여의 대장정임에도 3일간 총 4500석이 단숨에 매진되면서 화제가 됐다. 국내에도 오페라 잠재 관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
클래식의 대중화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이 자회사인 공연기획사 스페라와 주최·주관한 클래식 페스티벌 '피크닉 클래식 2013 인 서울'과 역시 스페라가 주관하는 행사로 젊음의 상징인 클럽과 교양의 상징인 클래식을 결합한 '옐로 라운지'는 가족단위와 젊은 청중을 모으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 9월 열린 '조수미 파크 콘서트'에는 아이돌 그룹 '비스트' 메인 보컬 양요섭이 출연, 청소년층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무용, 대중과 접점을 늘리다
'댄싱9'은 무용계 깜짝 스타를 배출했다. 특히 이선태와 이루다, 김명규, 류진욱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선전하면서 무용과 발레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들이 출연한 무용 무대는 이례적으로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도 선전했다. 지난 10월 국립무용단 '춤, 춘향'과 국립발레단 '지젤'은 교차편성으로 주목 받았다. 한솥밥을 먹다가 각자의 장르에 매진한 지 40년 만에 두 국립 무용단체가 대표 레퍼토리를 같은 극장(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하루씩 번갈아가며 선보였다.
'누가 연달아 한국무용과 발레를 보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으나 '춤, 춘향'과 '지젤'을 묶은 패키지 티켓은 국립레퍼토리시즌의 8개 패키지티켓 중 가장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 '춤, 춘향'은 국립무용단 51년 역사상 처음으로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립무용단은 또 현대무용가 안성수,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협업한 '단', 정구호가 첫 공연연출을 맡은 '묵향'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국립발레단은 세계적인 발레 스타 강수진이 단장으로 결정되면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안애순 예술감독의 취임 후 첫 프로젝트로 선보인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으로 브라질의 스타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동명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11분'으로 주목 받았다.
한국 전통무용의 대가로 통하는 임이조가 지난달 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이자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다. 인간문화재 이매방옹에게 40년 가까이 춤을 배우며 전통춤 계승의 대표주자로 손꼽혀왔던 터라 아쉬움이 크다.
이밖에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 통합, 예술의전당에 국립오페라단을 편입하는 방안 등을 놓고 의견이 대립되기도 했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국립현대무용단은 예정대로 협력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 손진책 예술감독이 임기를 마친 뒤 약 한 달 가량 공석인 국립극단 예술감독 인선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