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유쾌한 중극장 뮤지컬 2편이 주목받고 있다. '벽을 뚫는 남자'와 '웨딩싱어'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배우와 관객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벽을 뚫는 남자'
한 마디로 동화 같은 뮤지컬이다. 20세기 최고의 단편소설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국민작가 마르셀 에메(1902~1967)의 동명 소설이 바탕이다. 극작가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가 각색했다. '몽마르트 언덕의 사랑예찬'이라는 부제를 단 뮤지컬은 시종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배우들의 몸짓과 연출이 무성영화 시대와도 같은 낭만을 선사한다.
음악의 힘이 크다. '셸부르의 우산' '007' 시리즈 등으로 아카데미상 영화음악상 3차례, 그래미상을 5차례 수상한 미셸 르그랑(71)이 곡을 붙였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뮤지컬인데, 배우들이 호흡점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멜로디가 연속적이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듀티율을 연기하는 뮤지컬스타 마이클 리(39)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활약하는 리는 '미스 사이공'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주로 대형 뮤지컬에 출연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처음 출연한 작품이 '벽을 뚫는 남자'다. 다소 작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미스 사이공'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리를 만난 뮤지컬스타 홍광호(31)는 그의 가창력을 최고로 친다. "한국말이 노래를 부르기에 어려운 언어인데 마이클 리는 이를 너무 잘 풀어낸다"는 것이다. 영어식의 억양이 묻어나는 리의 한국어 발음은 유연한데 호흡이 힘든 '벽을 뚫는 남자' 넘버를 만나면서 구슬 굴러가듯 한다.
어쿠스틱하면서도 클래시컬한 편성에 일가견이 있는 뮤지컬 음악감독 변희석(41)씨가 이끄는 4인 밴드의 연주, 파스텔 톤의 무대도 로맨틱함을 더한다. 대중적인 음악희극인 오페레타 모양새인데, 결말은 가슴이 아프다. 소심한 소시민인 우편 공무원 듀티율은 벽을 뚫게 된 후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사랑마저 구한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려는 순간 벽에 갇히고 만다. 여운이 짙어지는 이유다.
지난해에도 이 뮤지컬에 출연한 탤런트 이종혁(39), 2011년 '헤드윅'에 이어 이 작품으로 두번째 뮤지컬에 출연한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34)이 리와 함께 듀티율에 트리플캐스팅됐다. 한류그룹 '소녀시대' 멤버 수영(23)의 언니로 '헤이, 자나!' 등에서 주목 받은 뮤지컬배우 최수진(27)이 여주인공 '이사벨' 역을 맡는다. 이들 배우를 비롯해 앙상블의 합이 돋보이는 11명의 배우가 극에 등장하는 23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2014년 1월26일까지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5만5000~11만원, 쇼노트·CJ E&M 공연사업부문. 1544-1555
동화 같은 낭만 뮤지컬 ★★★☆
◇'웨딩싱어'
피로연 밴드가 등장하는 즐겁고 시끌벅적한 전형적인 쇼뮤지컬이다. 젊은이들의 진실한 사랑찾기 여정을 흥겨운 디스코 음악 등으로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내 보는 내내 흥겹다.
애덤 샌들러(47)와 드루 배리모어(38) 주연 동명 로맨틱 코미디 영화(1998)가 바탕이어서 익숙하다. 작곡가를 꿈꾸는 '로비'와 다른 사람과 이미 약혼한 '줄리아'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다.
실연 당한 로비가 난동을 부려가며 남의 결혼식을 망치는 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소동을 귀엽게 그리며 유쾌함을 더한다.
그러나 뇌리에 박히는 유명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프러포즈 송으로 제격인 '당신과 함께 늙어가기' 외에 인상적인 곡이 귀에 걸리지 않는다.
공연에 활력소를 더하는 것은 로비 역을 맡은 그룹 '클릭비' 출신 가수 겸 뮤지컬배우 오종혁(30)이다. '그날들' '쓰릴미'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는 이 작품에서 가수라는 경력을 발판 삼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기량을 뽐낸다. 대사가 많은 부분에서 발음이 다소 엉키는 실수도 범하나 에너지만큼은 살아 펄떡인다. 순박한 이미지도 새로운 사랑에 갈팡질팡하는 로비의 모습에 자연스레 투영된다.
줄리아의 친구 '홀리'를 연기하는 최우리(31)도 극의 유쾌한 리듬에 한몫한다.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 '톡식 히어로' 등에서 기량을 뽐낸 그녀는 1막 마지막 '물쇼' 등을 통해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섹시함과 생기를 부여한다.
배리모어가 연기한 '줄리아'로는 국내 초연에서 이 역을 맡은 뮤지컬배우 방진의(33), '그날들' '번지점프를 하다'로 주목 받은 신예 송상은(22)이 더블캐스팅됐다. 2014년 2월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볼 수 있다. 6만~9만원. 뮤지컬해븐·CJ E&M 공연사업부문, 더스테이지 02-744-4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