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37)는 이미 다수의 영화에서 발군의 코미디 감각을 보여줬다. '남자사용설명서'(2013)는 그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를 증명한 자리였다. 그는 과장된 표정과 몸짓 혹은 욕으로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리듬으로 웃긴다. 웃기지 않을 것 같은 장면도 그가 등장해 한 마디 대사를 날리면 코믹해진다. 그러면서도 튀지 않는다.
이건 감독의 연출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연출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만드는 게 배우의 능력이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이것이 바로 배우의 존재 의미다. 오정세는 특별한 리듬감을 가진 배우다. 코미디는 액션과 리액션의 타이밍 조율이다. 오정세는 그만의 방식으로 리액션을 완급 조절한다. 단역을 전전하던 무명배우가 주연배우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건 이런 장점 덕분이다.
완성된 영화를 두고 어떤 한 부분을 제거했을 때의 결과물을 상상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레드카펫'에서의 오정세의 연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 영화에 오정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짐작컨대 꽤나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정우(윤계상)는 에로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꿈이 있다. 상업영화를 만들어 성공하는 것. 능력은 있지만 기회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던 중 정우는 우연히 아역배우 출신 은수(고준희)와 한 집에 살게 되고 정우는 감독의 꿈을, 은수는 배우의 꿈을 각자 키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오해한 채 헤어지고 그 사이 은수는 톱스타가 된다.
'레드카펫'은 광고 문구만 보면 섹스 코미디로 보이지만 '전형적인' 청춘성장물이다. 박범수 감독은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에로 영화 감독과 스태프, 에로 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 의해 3류로 분류된다고 해서 꿈조차도 꾸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동시에 지금 그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딛으라고 말한다. '정우'는 아마 박범수 감독 자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감독으로 살아갈 미래의 자신을 위한 다짐이다. 감독과 여배우의 로맨스는 감독 자신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꿈은 좋은 것이지만 '레드카펫'이 그것을 말하는 방식에는 단점이 많다. 영화는 클리셰로 가득하다. 정우와 은수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방식이 그렇다. 정우와 아버지의 관계 또한 우리가 청춘물에서 흔히 보던 것이고 정우 주변 인물 또한 청춘영화라면 으례 등장하는 인물만 있다. 영화의 설정 대부분이 이미 봐왔던 것이어서 신선함이 전혀 없다.
꿈을 좇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에 새로운 시도가 전혀 없다. 영화의 태도와 영화를 만드는 태도가 일치하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다.
영화를 살리는 건 오정세의 연기다. 오정세는 '레드카펫'의 코미디를 모두 책임진다. 그리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오정세의 연기가 좋은 것은 '진환'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코미디를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웃음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짓눌려 과한 연기를 했다면 오히려 재미는 반감하고 영화는 더 지루해졌을 것이다. 오정세는 선을 넘지 않아 돋보인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윤계상과 고준희 두 주연 배우보다 오정세가 기억에 남는 건 이 때문이다.
'레드카펫'에서 오정세의 대사 중 웃기지 않은 게 없다. 이건 특별한 재능이다. 이제 그는 대한민국에서 코미디 연기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됐다.
윤계상과 이준희는 제몫을 다했다. 그룹 '2PM'의 찬성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