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이야기하고, '진심'을 말할 때 배우 송강호(46)의 목소리는 차갑고 차분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중 '동진' '박쥐'의 '상현'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변호인' 속 장면과 그 장면에서의 연기를 이야기할 때 그는 뜨겁고 열정적이었다. 눈빛이 더 또렷해졌고 손동작은 커졌다. '관상'(감독 한재림)의 '내경'이나 이번 영화 '변호인'의 '우석'이 드러났다.
송강호는 '변호인'을 이야기하면서 세 장면을 특기했다. 이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속물 세무변호사 '우석'의 성공스토리, '진우'(임시완)의 사건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시간, 그리고 다섯 번의 공판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송강호는 이 세 부분에서 한 장면씩을 손꼽았다.
완전히 다른 세 장면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송강호만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송강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국밥집 장면을 지목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참고해야 됩니다. 이 시퀀스는 시나리오 작법상 베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강호가 이렇게 말한 신은 '우석'이 고교 동창생들과 '순애'(김영애)의 국밥집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시퀀스다.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공판에 대한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잘 들어오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국밥집 시퀀스가 훨씬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 장면에는 모든 게 들어있다"며 "주요 인물들 간의 역학관계, '우석'이라는 캐릭터의 속물 근성도 드러난다"고 귀띔했다. 송강호의 말이 빨라졌다.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충돌과 영화가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주제까지 다 있어요. 게다가 국밥집에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홀로 쓸쓸히 나오는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상대 배우와의 연기 리듬도 좋았습니다."
또 "이 장면은 다른 배우들도 다들 좋아했다"며 "너무나 즐겁게 촬영했다"고 전했다.
송강호가 중요하다고 말한 또 하나는 '순애'와 함께 '진우'를 면회하는 장면이다. '진우'의 변호를 망설이던 '우석'은 '진우'와 면회를 한 뒤 변호를 결심한다. 세무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게 되는 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면회 장면은 '우석'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인식하게 되는, 다시 말해 '발견'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 장면은 우석이 자신이 접한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미세한 심리 변화를 보여줍니다. 어떤 확신이 생긴거죠. 그래서 이 장면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두 번째 공판에서 '우석'의 변론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장면이다. 여기서 송강호는 컷을 나누지 않고 3분20초 동안 쉬지 않고 대사를 한다. 시사회가 끝나고 곧바로 이 장면에 대한 질문이 나올 정도로 인상적이다.
송강호는 이 장면을 놓고 "감정의 속도감"이라는 표현을 했다. 대사를 정확하게 외우는 것은 당연하고 그 대사를 하는 '우석'의 감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장면을 여러번 찍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장면이었죠. 한 번은 이 대사가 맘에 들고 어떤 때는 다른 장면이 맘에 들었습니다. 감정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컷을 사용할 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촬영한 것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게 관객들이 보게 될 장면입니다."
송강호가 주목한 이들 세 장면이 담긴 '변호인'은 1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