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옥상의 출입문 문이 열려 있어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11시53분께 광주 서구 쌍촌동 모 아파트 단지 12층 민모(48)씨의 집에서 '펑'하는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17층 높이의 이 아파트 12층과 그 위층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대부분 주민들이 잠자리에 들 밤늦은 시간, 12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기와 화염은 아파트 고층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특히 민씨의 집 바로 위에 살고 있던 13~17층 주민들은 아파트 복도와 계단까지 차버린 검은 연기 때문에 아래층으로 대피하기 쉽지 않았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연기와 불길로부터 먼 옥상으로 향했다. 자칫 옥상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출입문은 열려 있었고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 10여명은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기다린 끝에 30여분 만에 119 대원들의 안내를 받아 비상계단으로 구조됐다.
광주 서부소방서 한 관계자는 "바로 위 층 주민들의 경우 연기 때문에 지상으로 대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옥상으로 대피한 조치 때문에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부싸움 뒤 민씨가 홧김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면서 발생했던 화재로, 민씨 부부가 화상을 입고 민씨의 아들(12)과 딸(14), 주민 8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을 뿐 사망자는 없었다. 연기를 흡입한 주민들도 대부분 간단한 응급조치만 받고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평소 잠겨 있던 아파트 옥상 출입문을 연 것은 야간 당직 근무자라고 전했다. 불이 난 직후 화재경보기와 연동돼 있는 관리사무소의 경비벨이 울렸고 야간 당직 직원이 곧바로 옥상으로 올라가 비상 버튼을 눌러 출입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직원의 신속한 대처가 적어도 10여명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서부소방서 관계자는 "아파트 옥상 폐쇄는 소방법에 위배되지만 투신자살이나 각종 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화재 등 비상 시 신속하게 옥상을 개방해 입주민이 대피할 수 있도록 홍보해 왔는데 그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고층 아파트 화재시 아래층으로 대피하기 곤란할 경우에는 옥상으로 피하는 것이 좋다"며 "평상시 비상문을 잠가 놓더라도 화재 시에는 자동으로 문을 개방해 주는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화재 직후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대비 방송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부 주민들과 관리사무소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사무소 측은 "경비벨이 울리자 다른 직원이 13층 이상 주민들은 옥상으로, 나머지 주민들은 지상으로 대피하라 방송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화재 경보음이나 방송조차 듣지 못했으며 불이 난 줄 모르고 집안에 있다가 앞 동 주민의 "대피하라"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자신의 집을 빠져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화재경보기와 소방스프링쿨러 작동 여부 등 소방시설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수사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또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서 '남의 집 불구경'에 나선 시민들과 아파트 주차장에 겹겹이 세워진 차량들이 소방차의 진입을 어렵게 했다며 아쉬워했다.
서부소방서 한 관계자는 "불구경을 나온 일부 시민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소방차가 현장까지 도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소방차나 구급차 길 터주기 운동은 차량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