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건(36)이 지난 7월25일 핀란드 헬싱키에 섰다. 밤 11시. 하지만 주변은 밝았다. 백야다. 헬싱키에서 윤건은 대낮인 것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미니앨범 '코발트 스카이 072511'이 자리한 순간이다.
"백야라는 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기후잖아요. 밤새 해가 지지 않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뒹굴고 노는 거에요. 여름만 되면 뛰쳐나와 놀고 있는 모습에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죠."
윤건이 10일 미니앨범 '코발트 스카이 072511'을 내놨다. 여행의 출발과 도착의 마음을 담은 인트로와 아우트로를 포함해 '프리' '자석처럼' '선샤인' 등 5곡이 담겼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 아시죠? 공항에서 짐을 끌고 나와서 낯선 곳의 공기를 마셨을 때의 기분 말이에요. 너무 좋지 않나요? 딱 그 기분입니다."
'아이 갓 어 프리(I Got a Free)'로 시작되는 '프리'는 브리티시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곡으로 헬싱키에서 스케치한 것이다. 윤건은 담백한 보컬로 일탈을 그리는 이들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래 짝사랑해온 음악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응원하는 곡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롤 모델이 다 영국 뮤지션이거나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뮤지션이에요. '비틀스' 멤버들, 스팅을 좋아했죠. 나이가 좀 들고난 후에는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를 즐겨 들었어요."
"음악을 이것저것 듣다 보니 힙합이나 R&B 쪽으로 풀렸어요. 그게 또 먹히다 보니 계속하긴 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죠. 소스가 떨어지면 억지스럽게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죠."
그는 지난해부터 1990년대 이후 영국의 모던록 사운드를 지칭하는 브릿팝 풍의 곡을 지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앨범 작업 스타일부터 곡의 가사, 창법까지 모든 곳에 변화를 주고 있다.
"R&B 곡을 쓸 때는 모티프 하나를 두고 1년에 걸쳐 고민할 때도 있었죠. 특히 가사를 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고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스케치하듯 밑그림을 그리고 조금씩 구체화하는 쪽으로 작업해요. 음악을 대하는 지금의 제 자세가 좋아요.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출연 중인 SBS TV '패션왕 코리아'에서 먼저 선보여 주목받은 타이틀곡 '자석처럼'의 탄생이 그렇다. "'자석처럼'은 10분 만에 만들었어요. 하나의 모티프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쭉쭉, 자석처럼 단어와 멜로디가 같이 생각났죠.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몽환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브릿 냄새'를 찾기 위해 앨범 엔지니어와 함께 머리를 쥐어짰다. "'영국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했느냐'는 물음에 "기분 좋았다"며 활짝 웃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리티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백 투 유' '딱 한잔만' 등 기존에 발표했던 곡에 내년 여름께 발표할 정규앨범 수록곡을 더 하면 밴드곡만으로 공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짝사랑해오던 음악에 고백을 건네기에 앞서 윤건은 변했다. 본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며 '안전을 추구해오던 경향'에서 벗어났다는 고백이다.
"예전에는 음악 작업을 할 때 어떤 강박감이 있었어요. 그 강박감을 처음 깨기가 어렵지 일단 깨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술술 풀리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제가 여태까지 만든 앨범 중에서 실타래가 가장 잘 풀린 앨범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시간을 되짚어 뮤지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에게 조언도 했다. 자신을 다잡고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음악하는 사람은 문화적 시각, 소양뿐 아니라 사상이나 철학까지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자기의 생각을 담아 표현할 수 있어야 음악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