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에 나선 '페어 퀸' 오정아 2단이 '제8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에서 한국 바둑계의 거목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여제(女帝)'로 성장해 가고 있다.
오정아 2단은 지난 26일 밤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회 제16국에서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을 상대로 289수 만에 백반집승을 거뒀다.
오정아 2단은 25일 밤 같은 장소에서 치러졌던 제15국에서 2연승을 노리던 '야전사령관' 서봉수 9단에게 231수 만에 흑불계승한 데 이어 이날 조훈현 9단까지 무너뜨리며 파란을 일으켰다.
오정아 2단에 앞서 이번 대회에서 김혜림 2단이 3승(제2~4국), 박태희 초단이 4승(제6~9국), 김나현 초단이 2승(제12~13승)을 각각 거뒀다.
하지만 오정아 2단의 2연승에 더욱 열광하는 것은 상대가 서봉수·조훈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화려한 경력이나 묵직한 명성 탓만은 아니다. 바로 전기대회에서 각각 5연승, 6연승을 나눠 맡아 시니어팀의 네 번째 우승을 합작했던 서봉수와 조훈현이라서다.
지지옥션배는 만 45세 이상(올해는 1969년 이전 출생) 시니어 남자기사들과 여자기사(나이제한 없음) 각 12명이 '시니어'와 '여류' 등 2개 팀을 편성, 한 판의 승리자가 다음 상대와 계속 대국하는 '연승전' 방식으로 우승을 다툰다.
이번 대회에서 제13국까지 9명이 이미 패퇴해 3명만 살아남았던 시니어팀이 4명을 잃었을 뿐 8명이 생존해 있던 여류팀을 상대로 전혀 조급해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들 '원투 펀치'를 믿는 덕이었다. 그러나 두 백전노장이 오정아 한 사람 앞에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면서 이제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에게 모든 것을 걸게 됐다.
서봉수 9단과의 첫 맞대결에서 이긴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날 조훈현 9단을 누른 것은 오정아 2단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오정아 2단은 이날 승리로 자신의 입단 첫해이던 지난 2011년 치러진 제5기 대회에서 '한 수'를 제대로 가르쳐줬던 조훈현 9단에게 설욕했다. 동시에 바로 그 해 대회에서 최다연승 타이기록(8승)을 세우며 시니어팀의 우승을 견인했던 조훈현 9단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1승도 못 거둔 채 쓸쓸히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지난 8~11일 전남 영암·강진·신안군을 순회하며 펼쳐진 '2014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의 '국제 페어바둑대회'에서 우승(한국·중국·타이완 공동)을 함께 이뤄냈던 '파트너' 조훈현 9단과 정면으로 맞서 거둔 승리라는 사실도 있다.
오정아 2단은 페어대회에서 우승한 뒤 "(조훈현)사범님과 짝을 이뤄 타이완의 린하이펑(林海峰),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중국의 차오다위안(曹大元) 9단 등 세계 바둑계의 거목들과 겨루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번 대회 참가가 앞으로의 내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우승 보다 경험에 값진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제1라운드에서 내 실수로 시간차 패배를 하지 않았다면 (조훈현)사범님이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창설된 대회에서 단독 우승을 하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참 동안 자책했다.
그런 인연들이 있는 조훈현 9단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돼 조훈현 9단에게 패배의 쓰라림 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만족감을 안겨줬을 듯하다.
오정아 2단은 오는 9월1일 밤 같은 장소에서 자신이 수련 중인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인 유창혁 9단을 상대로 3연승과 우승 달성에 도전한다.
오정아 2단은 "두 사범님들과 겨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승리를 하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얼떨떨하다"며 "이제는 내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창혁 사범님을 상대로 좀 더 편안하게 대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6월23일 개막한 올해 대회는 시니어 남자기사 54명과 여자기사 37명이 예선에서 본선 티켓을 각 8장을 두고 경합했다.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각 팀 8명에 시니어 랭킹 1~3위(조훈현, 유창혁, 서봉수 9단)와 박상동 8단(후원사 추천) 여류 랭킹 1~3위(최정 4단, 박지은 9단, 김혜민 7단)와 오유진 초단(후원사 추천)이 합류해 팀 당 12명이 본선 대항전을 펼쳐오고 있다.
부동산 경매회사 지지옥션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한다. 제한시간은 10분40초 3회다. 우승상금은 1억원이다.
이 대회는 2007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번째 대회를 맞았다. 그간 시니어팀은 2, 3, 5, 7기에서, 여류팀은 1, 4, 6기에서 우승했다. 우승 횟수에서 열세에 놓인 여류팀이 이번에 승리하면 양팀은 역대전적 4-4로 다시 균형을 맞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