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현대중공업이 은퇴한 CEO를 구원투수로 다시 불러들였다.
현대중공업은 12일 최길선 전(前) 대표이사 사장을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으로 선임했다. 지난 2분기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취해진 비상경영체제의 일환이다.
최길선 신임 회장은 국내 조선업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릴 만큼 오랜 기간 이 산업에 종사했고, 한국 조선산업을 세계 1위로 끌어 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최 회장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72년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 설립을 처음 추진할 때부터 합류한 '창업 공신'.
입사 12년 만인 1984년 처음 임원이 된 후 한라중공업 조선사업본부장 부사장 거쳐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을 모두 역임했다. 40여년 가까이 조선업에 투신하며 세계 1위 조선업을 일궈내는데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업계 처음으로 조선협회장직과 플랜트 협회장직을 함께 맡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내부에서도 최 회장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다.
그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조선경기가 급락하면서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자 "경영위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임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며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최 회장은 이후 2009년 11월 사임할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았다. 고통분담에 앞장선 덕에 그는 강성으로 소문난 현대중공업 노조로부터도 두터운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퇴진 과정에서 보여준 용단도 화제가 됐다.
최 회장은 당시 송재병 현대미포조선 사장과 함께 "회사가 좀 더 젊어지고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며 동반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금융위기로 인한 조선 경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자진해서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최 회장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직을 맡은 인물이 당시 부사장이던 이재성 현 현대중공업 회장이다.
1975년 입사해 최 회장보다 3년 후배인 이재성 회장이 '선배'를 현역으로 불러들인 것은 무엇보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해야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경영을 지휘하는 역할을 이 회장 자신이 맡고 최 회장에게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을 맡아 줄것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이들 사업 부문의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분기 1조103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1973년 회사 창립이래 최대규모 적자다. 특히 이 가운데 조선이 5540억원, 해양이 3740억원, 플랜트가 2369억원 적자로 거의 대부분이 이들 세 부문에서 비롯됐다.
현대중공업이 최길선 회장에게 이들 부문을 맡긴 것은 두터운 인맥과 경험, 경영능력을 활용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재성 회장은 회사 전반적인 경영을 담당하고, 최길선 회장은 2분기에 주로 적자를 낸 조선·해양·플랜트를 총괄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