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이 투자 대상 회사의 주주총회 임원 선임 과정에서 자체 지침 또는 기준에 어긋나게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경제개혁연구소와 사회적 책임투자 전문분석기관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행사지침 및 세부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문제성 의결권'을 18건이나 행사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에는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법령상 이사로서의 결격 사유가 있는 자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한 의무수행이 어려운 자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 권익의 침해의 이력이 있는 자 등의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반대 규정은 ▲당해 회사 또는 계열회사의 최근 5년 이내 상근임직원 ▲이사회 출석률이 직전 임기의 75% 미만 ▲재직한 임기와 신규 임기를 포함해 사외이사 재직연수가 당해회사 및 그 계열사를 포함해 10년을 초과 ▲자문계약 등을 체결하고 있는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독립성 훼손 우려 등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내부 지침에 따라 일부 임원 선임에 대해 반대했어야 하나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LS의 권욱현 사외이사의 경우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계열사인 LS산전의 사외이사를, 2011년부터 LS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아울러 지난해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신규 임기를 포함해 재직연수가 10년을 넘는 대림산업 신정식·오수근 사외이사의 선임 안건을 찬성했다. GS홈쇼핑 이만우 사외이사도 2005년부터 사외이사직을 맡아왔으나 찬성표를 던졌다.
올해 주총에서 선임된 LG디스플레이 강유식 사내이사의 경우 2004년 불법대선자금 제공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력이 있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제기된다.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2800억원의 분식회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두산 박용만 회장을 지난해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올해 SK네트웍스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허용석 후보의 경우 이 회사를 포함해 3개의 상장회사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사외이사가 2개 이상 다른 회사의 이사, 집행임원, 비상금이사, 감사를 겸직하는 경우 그 직을 상실토록 규정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수정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문제성 의결권 행사는 대부분 임원 선임 안건에 한정되며, 관련 지침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문제성 의결권 행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사지침과 세부기준을 더욱 구체화하고 의결권 행사 이유를 상세히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주총 안건 반대 비중을 꾸준히 늘리는 등 과거에 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면서도 "국민연금이 반대한 회사의 안건이 실제 부결된 사례는 거의 없어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가 곧 투자한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