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자산운용사들이 채권 매입 주문을 낸 뒤 가격이 떨어지면 아예 채권을 인수하지 않는 방식으로 손실을 증권사나 펀드 가입자에게 전가한 정황이 드러났다. 상당수 자산운용사 임직원들은 미신고계좌를 이용해 주식, 선물 등을 매매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박영준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15일 "지난 5월26일부터 6월25일까지 7개 자산운용사에 대한 현장검사와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펀드판매사에 대한 미스터리쇼핑을 실시, 이같은 불법행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부원장은 "운용사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런 적폐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던 부분을 새로 적발한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으며, 절차를 밟아 제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메신저 등 활용해 브로커와 음성적 위법행위
금감원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자본시장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펀드매니저가 채권 등을 거래하기 전에 펀드별로 배분비율을 미리 정하도록 하고, 전 과정을 전산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운용사들은 펀드매니저가 사전에 브로커와 거래하고 배분까지 마친 후 형식적으로 적법절차를 진행하는 것처럼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음성적 거래는 메신저 등을 활용해 이뤄졌다.
브로커를 중심으로 음성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채권파킹거래, 부당 편익요구 및 제공 등 시장질서 교란행위도 발생했다.
채권파킹은 운용사가 구두로 증권사에 채권 매입을 요구한 후 펀드에 담지 않고 증권사에 맡겨두는 거래다. 채권가격이 오르면 운용사가 이익을 보지만 가격이 내리면 손실을 증권사와 펀드 가입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어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돼있다.
개인·기관·계열사 등 투자자간의 운용보수 차이도 과도한 수준이었다.
현행 법은 자산운용사가 정당한 이유없이 투자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 운용의 경우 개인으로부터 받는 수수료율이 기관의 3배, 계열사의 6배였다.
박 부원장은 "다수의 운용사가 채권자산의 배분 방법,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 겸직 금지 등 법규를 위반하고 있었다"며 "개인이나 개별 회사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업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위법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자산운용시장에 수수료 등을 매개로 불건전한 갑을관계가 형성돼있고, 을의 위치인 회사도 갑의 불법행위 요구와 은폐에 동조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운용정보 활용해 차명계좌로 선매매
자산운용사 경영진 등 임직원의 탈법행위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현행 법은 운용사 임직원이 직무 중 얻은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좌를 회사에 신고하고 매매내역을 통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임원과 직원이 미신고계좌나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 선물 등을 매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의도적으로 매매내역을 은폐했고, 일부는 펀드 운용정보를 활용해 선행매매를 하는 등 심각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투자일임재산에 대한 운용·관리도 부실했다.
점검대상 운용사들의 투자일임재산은 300조원으로 전체 운용자산(645조원)의 47%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용사는 투자일임 전담부서, 시스템 등을 별도 구축하지 않고 펀드운용 부서에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일임재산을 투자자별로 따로 운용하지 않고 함께 운용하거나 펀드 등과의 이해상충 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등 불법행위가 발생했다.
박 부원장은 "운용사 임직원은 막대한 고객자산을 운용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높은 준법의식이 요구됨에도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심각한 탈법행위가 벌어졌다"며 "투자일임계약 위반, 펀드와의 이해상충 역시 투자자와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펀드판매사 불완전판매 만연"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펀드판매사들에서도 불완전판매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판매사가 투자자보호를 실천하기보다는 그저 서류상으로 판매근거를 확보하는데 치중했으며, 투자위험지도 작성·비치, 투자설명서 색상차등화 등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위험등급의 상품을 소개하면서 상품별 수익률만 설명하고 투자위험을 알리지 않거나 계열사 펀드임을 알리지 않고 단독 상품을 권유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같은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제재를 추진하는 한편 자산운용사 대표이사(CEO) 간담회를 열고 운용업계 스스로의 개선을 촉구할 방침이다. 특히 미스터리 쇼핑에서 문제가 적발된 펀드판매사에 대해서는 판매관행 개선계획을 요구하고, 개선상황을 상시 점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