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 결국 물러났다.
홍 감독은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표팀 감독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홍 감독은 이 자리에서 "지난 1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며 실수도 있었고 잘못도 있었다. 저 때문에 많은 오해가 생겼던 것 같다"며 "발전된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오늘로서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전했다.
홍 감독이 지휘한 축구대표팀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8강에 도전했으나 조별리그 H조에서 최하위(1무2패·승점 1) 성적으로 조기탈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은 1998프랑스월드컵(당시 1무2패) 이후 16년 만이다.
그러나 홍 감독의 사퇴를 부른 것은 비단 '성적 부진' 때문만은 아니다.
대표팀 구성부터 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지도력 부재, 나아가 개인적 처신까지 모든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의 지나칠 정도의 '홍명보 감싸기'도 적잖이 일조했다.
앞서 홍 감독은 대표팀 엔트리를 선발할 때부터 자신이 줄곧 천명해 온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이라는 대원칙을 무너뜨렸다. 홍 감독은 지난 5월 최종엔트리를 발표하면서 그간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도 잡지 못한 박주영, 윤석영 등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특정 선수들을 고집스럽게 발탁, '의리 엔트리' 논란을 일으켰다.
그래도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 등과 함께 하는 비교적 무난한 조편성을 바탕으로 최고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하며 무난히 16강에 진출해 박주영 선발 논란 속에서도 동메달 신화를 일궜던 2012런던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홍 감독이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해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시각이 더 우세했다.
6월18일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1-1 무)에서 아쉬운 무승부를 거두며 6월23일 치러지는 첫 승 상대로 여겨온 알제리와의 2차전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으나 2-4로 완패해 충격을 안겼다.
특히 알제리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한국과의 일전을 위해 선발 출전하는 선수들을 대폭 물갈이하고 1차 벨기에전(1-2 벨기에 승)과 180도 다른 공격축구를 채택하는 등 맞춤형 전술을 펼친 것과 달리 한국은 러시아전에서 한계를 드러낸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 골키퍼 정성룡 등을 고스란히 선발 출전시키고, 런던올림픽에서부터 사용한 4-3-2-1 포메이션을 고수하면서 패배를 자초해 감독의 자질에 대한 비판까지 나왔다.
16강 진출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를 갖고 임한 6월27일 벨기에와의 3차전(0-1 패)에서는 여론에 떠밀린 듯 박주영, 정성룡 대신 김신욱, 김승규를 각각 선발 기용하는 등 변화를 줬으나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에도 졸전 끝에 패배를 떠안아 반전에 실패했다.
결국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급기야 6월30일 홍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할 때 일부 축구팬은 대표팀을 향해 엿사탕을 던지고 퇴진 요구 플래카드를 설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홍 감독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앞서 벨기에전에서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축구협회에 사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2일 정몽규 회장과 독대해 다시 사퇴 의사를 전했지만 협회의 강한 만류와 설득으로 사퇴 의사를 접었다.
허정무(59) 협회 부회장은 3일 기자회견을 열어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다.
허 부회장은 당시 "홍명보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계약기간이 내년 6월까지로 아직 임기가 남은데다 월드컵 준비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면서 “월드컵을 경험삼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뜻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홍 감독의 유임 결정을 통해 여론을 정면돌파하려던 축구협회의 방침은 오히려 더욱 큰 논란을 불렀다.
축구협회가 지난 1998프랑스월드컵에서 차범근(61) 당시 대표팀 감독에게 벨기에전(0-5 패) 대패의 책임을 물러 조별리그 중 전격 경질한 것이나 지난 2011년 12월 대표팀 사령탑이던 조광래(60) 감독이 3승1무를 거둔 상황에서 치른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레바논전(1-2 패)에서 패한 책임을 물어 역시 지휘봉을 빼앗은 것과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축구협회에 "껄끄러운 감독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나아가 이번 월드컵 참패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축구 팬들은 홍 감독은 물론 허 부회장, 황보관 기술위원장 등의 동반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악마까지 기술위원회 책임론을 들고 나와 전면개편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경제매체 이투데이가 7일 홍 감독이 지난 5월 경기 분당에 땅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땅 구입보다 시기가 문제가 됐다. 대표팀 엔트리 발표를 앞둔 지난 4월에 땅을 보러 다니고, 대표팀 소집훈련이 시작된 직후인 5월15일 최종계약과 함께 잔금 9억9000만원을 치르고 본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는 보도 내용에 따라 대표팀에 전력해야 할 시기에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난이 고조됐다.
여기에 벨기에전이 끝난 뒤 베이스캠프가 있는 브라질 이구아수로 돌아와 대표팀이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뒤풀이를 한 사진이 한 대표 선수의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적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게다가 브라질월드컵이 16강전, 8강전, 4강전으로 이어지며 알제리,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약팀들이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 세계적인 강팀들이 매 경기 에서 열정적으로 경기하는 모습 등이 생중계되면서 홍명보호와 비교대상이 돼 오히려 비난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며 온 국민의 사랑과 추앙을 받던 스타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해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축구영웅' 홍명보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대한민국 축구를 퇴보시킨 불명예를 안고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홍 감독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말한 "(월드컵 직후 사퇴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사퇴 얘기를 하면 나 자신은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과 관련된)그외의 모든 비난까지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갖고 경기력·기술·팀 운영 문제 등에 대해 생각을 했고 이번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나 "땅 매입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훈련 중에 나와서 한 일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며 "월드컵 후 뒤풀이 논란은 패배로 슬퍼하는 어린 선수들을 챙기고 싶었던 내 생각이었다. 리더로서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도 공허한 메아리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