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잘 먹고 잘사는 나라가 된 것 만으로 과연 충분할까요? 대한민국의 세계적 사명은 무엇일까요? 한국은 (경제적으로)큰 성공을 거둔 만큼 책임감도 매우 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용 세계은행그룹 총재는 3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 2층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미얀마,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지원과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김 총재가 개발도상국 지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면서부터다. 어린시절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총재는 지난 1964년 미국 텍사스로 이민을 갔다. 빈곤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소수인종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김 총재는 "아버지는 치과의사셨고, 어머니는 석사학위를 마쳤지만 (우리는)분명 다른 사람들이었다. 인종차별도 겪었다"면서 "이후 시골이지만 교육제도가 좋고 보안과 치안이 잘 돼 있는 아이오와로 이사를 갔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항상 의문을 가져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모님은 (자식들이)미국인이 되길 원하셨고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형과 여동생 나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떠올렸다.
김 총재는 브라운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양한 한국인들을 만나게 됐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김 총재는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고 인류학 박사학위를 밟기로 결심했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2년간 한국어와 문화를 배웠다. 나에게 정체성 문제는 그만큼 컸다"고 고백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총재는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인류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김 총재는 "언젠가 한국에 오면 큰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한국에 와 보니 한국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며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고 인류에 대한 사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프리카 아이티로 떠난 김 총재는 개발도상국 지원을 향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아이오와에서 살 때는 한 번도 (피부가)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티인들에게 나는 피부가 흰 사람이었고, 부자였고, 여러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아이티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인류에 대한 사명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김 총재는 청소년들과 인류의 공동 번영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갖는다. 김 총재는 "간담회 후 용광 중학교 학생들과 만나 '인류의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