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정재영(43)은 거침이 없다. 적절한 답변을 생각해내기 위해 고개를 숙이거나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멈추는 법도 없다. 질문이 떨어지면 곧바로 답이 이어졌다. 목소리는 크고 발음은 정확하다.
액션과 코미디, 멜로와 스릴러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우연이 아니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한 말도 "생각나는대로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직감(直感)'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정재영은 분명 좋은 직감을 가진 배우다.
정재영은 김현석(41)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열한시'(28일 개봉)를 선택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김현석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좋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에도 끌렸다. "다 맘에 드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며 명쾌하기만 하다.
정재영은 이 영화에서 천재 물리학자 '우석'을 연기했다. 시간 여행에 집착,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역할이다.
타임머신에 대한 우석의 과도한 집착 탓에 주인공이 우석이 아니라 타임머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편해 하기는커녕 정재영은 "그 말이 맞다"고 딱 잘라 말했다. "타임머신이 만들어진 상황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죠. 당연히 타임머신이 주인공일 수밖에요. 캐릭터를 살리려고 하면 영화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는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가 있고 사건 자체가 중요한 영화가 있다"며 "매번 캐릭터가 부각되는 영화를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다양한 종류의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해봐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한 번에 뭔가를 이뤄낼 수는 없다"면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내가 원하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다. 생각나는대로 한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한다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재영이 다양한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좋은 배우가 되는 길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요.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좋은 배우는 인간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쁜 사람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10년 뒤에 어떤 배우가 돼 있을까. "나이가 50대 중반이 된다. 생각도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1년 뒤에도 내가 어떤 사람이 돼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그가 말한 건 '배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