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국 32개국 중 사령탑에 외국인을 기용한 나라는 모두 14개국이다.
독일 출신 감독이 카메룬·그리스·스위스·미국 등 4개국을 지휘하고, 콜럼비아 출신이 코스타리카·에콰도르·온두라스 등 3개국을 맡고 있다. 이어 아르헨티나 출신이 칠레·콜럼비아 등 2개국, 이탈리아 출신이 일본·러시아 등 2개국을 각각 이끈다. 이 밖에도 프랑스 출신이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 출신이 이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출신이 알제리를 각각 지휘한다.
각 조에서 외국인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긴 나라는 1개국 이상이고, C조처럼 4개국(콜럼비아·그리스·코트디부아르·일본) 모두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경우도 있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 야망'과 '애국심'의 충돌 여부다.
이는 대체로 축구 후진국들이 축구 선진국 출신 지도자들을 감독으로 영입하는 만큼 외국인 감독들의 조국들이 모두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즉, 우승으로 가는 길목은 물론, 최소한 자신이 지휘하는 나라와 조국이 모두 결승에 오를 경우 우승을 놓고 격돌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른바 '우승 후보국'들은 외국인에게 지휘봉을 맡긴 경우가 전혀 없으니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는 하다.
◇ 클린스만 vs 뢰브, "독일 출신 세계 최고의 지도자는 이제 나야 나"
현재 브라질에서 조국과의 한 판이 이미 확정된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50) 미국 대표팀 감독 뿐이다. 조별리그 G조에 미국과 조국 독일이 함께 속한 탓이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독일이 무난히 16강 진출을 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남은 16강 티켓을 놓고 미국은 포르투갈·가나 등과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클린스만 감독은 오는 6월27일(한국시간) 조별리그 경기에서 조국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독일 역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라는 초강력 병기를 보유한 포르투갈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있는 만큼 조 1위 진출을 위해 미국에게도 아량을 베풀 처지가 아니다.
둘의 맞대결에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바로 클린스만 감독과 요하임 뢰브(54) 독일 감독의 맞대결이다.
지난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클린스만과 뢰브는 감독과 수석코치로서 독일의 3위를 합작했다. 이후 클린스만 감독의 지휘봉을 이어 받은 뢰브 감독은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다시 3위에 독일을 올리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반면 클린스만은 2008~2009시즌 감독을 맡은 바이에른 뮌헨(독일)에서 실패한 뒤 2011년 미국 감독이 돼 재기를 모색 중이다.
결국 브라질 무대는 두 사람이 '독일 출신 세계 최고의 지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자존심 대결의 장이기도 하다.
◇ 기왕 만나야 한다면 '결승'에서
다른 외국인 감독 13명이 조국과 맞붙는 경우는 일단 두 나라가 16강을 모두 통과했을 때부터 일어날 수 있다.
C조의 일본과 D조의 이탈리아가 각각 16강에 진출할 경우 이탈리아 출신인 일본의 알베르토 자케로니(61)감독의 앞에 곤혹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일본이 C조 1위, 이탈리아가 D조 2위 또는 일본이 C조 2위, 이탈리아가 D조 1위처럼 순위가 엇갈렸을 때다.
월드컵에서는 16강전부터 토너먼트다. 2010월드컵에서의 원정 16강을 넘어 원정 8강 이상을 노리는 일본의 지휘봉을 잡은 이상 자케로니 감독은 조국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한다.
F조의 이란과 G조의 포르투갈, H조의 알제리와 F조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가 역시 각기 엇갈린 조별리그 순위로 모두 16강에 진출한 뒤 다시 모두 8강에 오르면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61) 이란 감독과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출신 바히로 할릴로 비치(62) 알제리 감독이 운명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2010월드컵에서 조국을 지휘했지만 16강에 그친 탓에 사임했던 케이로스 감독으로서는 어쩌면 조국과의 맞대결을 내심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할릴로 비치 감독은 조국을 이기고 4강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지휘했던 C조의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결승행을 다투는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코트디부아르가 엇갈린 조별리그 순위로 16강에 진출해서 4강까지 올랐을 때다. 같은 조별리그 순위로 16강행에 성공한다면 결승전이 맞대결의 장이 된다.
물론 알제리가 한국과 함께 H조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만큼 이뤄지기 힘든 일일 듯하다.
C조의 콜럼비아와 F조의 아르헨티나가 엇갈린 조별리그 순위로 16강에 나서 계속 승승장구하면 호세 페케르만(65) 콜럼비아 감독은 4강에서 조국과 만날 수 있다.
페케르만이 최근 콜럼비아에 귀화했다고 하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2006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8강(6위)에 올리며 순위를 떠나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 나라"라는 극찬을 받기까지 했으니 복잡한 기분이 들 지도 모른다.
페케르만 감독으로서는 콜럼비아와 아르헨티나가 각각 C조와 F조에서 최강으로 각각 꼽히는 만큼 둘 다 조별리그 1위로 오른 뒤 승승장구해 운명의 승부를 결승전에 가리기를 내심 바랄 것이다.
D조 코스타리카와 C조 콜럼비아 역시 엇갈린 조별리그 순위로 나란히 16강에 진출해 계속 승리할 경우 콜럼비아 출신 호르헤 핀토(62) 코스타리카 감독이 역시 4강에서 조국과 싸워야 한다. 물론 우루과이·잉글랜드·이탈리아 등 강팀이 즐비한 D조에서 속한 코스타리카로서는 '생존'이 우선이기는 하다.
B조의 칠레와 F조의 아르헨티나, C조의 그리스와 G조의 포르투갈, C조 코트디부아르와 E조 프랑스, A조 카메룬과 G조의 독일이 각각 같은 순위로 16강행에 성공한 뒤 이후 계속 이기면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삼파올리(54) 칠레 감독, 포르투갈 출신 페르난도 산토스(60) 그리스 감독, 프랑스 출신 사브리 라무시(43) 코트디부아르 감독, 독일 출신 포커 핀케(66) 감독은 4강에서 조국을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한다. 엇갈린 순위로 16강에 오른다면 결승에서다.
그렇게만 된다면 삼파올리 감독은 무명 선수 출신이 지도자로 성공하는 것이 되고, 라무시 감독은 감독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가 제대로 '사고'를 치는 것이 된다. 산토스 감독은 조국 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그리스에 제대로 보은할 기회를 만들게 되며, 핀케 감독은 자신을 한 번도 대표팀 사령탑에 앉히지 않은 조국을 상대로 뭔가를 보여줄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칠레, 그리스,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모두 4강까지 갈 전력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따라서 이들 감독은 걱정할 필요도, 기대를 가질 이유도 없을 듯하다.
E조 에콰도르의 레이날도 루에다(57) 감독과 온두라스의 루이스 수아레스(55) 감독 역시 자신들의 지휘하는 나라와 C조에 속한 조국 콜럼비아가 조별리그에서 같은 순위로 16강에 오른 뒤 4강까지 진출할 경우 결승행을 두고 조국과 회심의 한 판 승부를 치러야 한다. 엇갈린 순위라면 결승전에서다.
자국 감독인 자신들을 제쳐두고 아르헨티나 출신 페케르만 감독을 사령탑에 올린 조국을 상대로 복수할 기회일 수도 있다. 물론 약체인 이들 나라가 그만한 순위에 오른다는 것은 공이 아무리 둥글어도 사실상 힘들다. 이들은 오히려 6월21일 조별리그에서 펼쳐질 '콜럼비아 더비'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듯하다.
◇'명장'들도 예외는 아니야
E조 스위스와 G조의 독일이 같은 조별리그 순위로 16강에 진출할 경우 독일 출신 오트마르 히트펠츠(65) 스위스 감독은 8강에서 각기 조국과 맞대결을 벌일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조별리그 순위가 엇갈린다면 결승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럴 경우 히츠펠트 감독은 조국에 비수를 꽂는 것 아니냐는 우려 보다 비센테 델 보스케(64·스페인) 스페인 감독·파비오 카펠로(68·이탈리아) 러시아 감독·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66·브라질) 브라질 감독 등과 더불어 '브라질월드컵 4대 명장'으로 꼽히지만 왠지 '함량 미달'로 보이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다만 스위스의 8강은 객관적인 전력상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히츠펠트 감독의 일장춘몽이 될 공산이 크다.
H조 러시아의 카펠로 감독은 D조의 조국 이탈리아가 조별리그 같은 순위로 16강에 오른 뒤 4강까지 진출할 경우 역시 결승행을 두고 벼랑 끝 승부를 치러야 한다.
그간 AC밀란·AS로마·유벤투스(이상 이탈리아)·레알마드리드(스페인) 등 빅클럽을 지휘하며 수많은 리그 우승을 거뒀지만,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던 그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한 판이 될 것이다. 다른 순위로 16강행을 한다면 결승전을 기다려야 한다.
브라질월드컵 4대 명장 중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그와 히츠펠트 감독 간 순위 경쟁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