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3년 2월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내민 정부조직개편안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미래창조부 신설과 함께 행정안전부의 안전행정부로의 명칭변경이었다.
행정 앞에 안전을 두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우선 제기됐다. 당장 명칭변경에 따른 비용만해도 문제였다.
당시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은 정부에 명칭변경에 따른 행정비용이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비용추계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만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명칭 변경에 따른 각종 간판, 공무원 명함, 표찰 등의 변경비용 등을 감안하면 100억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됐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공청회에서 "(행안부와 안행부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름만 바꾼다고 하는 것은 행정적인 소비만 가져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명칭교체 비용이 독거노인을 10년 동안 지원할 수 있는 돈이라는 얘기도 이 와중에 흘러나왔다.
이와는 별개로 기자들 사이에서는 안전행정부로 변경돼 줄임말이 '안행부'가 되는데 이 경우, 어감상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다분히 비꼼의 의미가 있었다. 새로 만들어질 미래창조부가 '미창부'로 불릴 수 있다는 얘기도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이름만 바꾸고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명칭변경은 생각보다 정부 기능에 큰 폭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되면서 사실상 고용이 노동보다 우선시된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후보 시절부터 국민의 안전을 전면에 내세웠던 박 당선자의 의지를 뒷받침하듯 안전행정부로의 명칭개정은 논란 속에서도 끝내 이뤄졌다.
급기야 안전행정부는 그해 12월30일 한해를 빛냈던 안전행정부 10대 뉴스 중 하나로 '정부조직 개편 및 안전행정부 출범'을 꼽았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희망의 새 시대'를 구현하기 위한 박근혜정부의 조직개편이 지난 3월 23일 마무리되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해양수산부 등 6개 부처가 신설되었고, 행정안전부는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재난과 안전을 총괄·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같은 자신감은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하면서 순식간에 치욕의 근거가 됐다.
그렇다면 안전을 그토록 강조하던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참사이후 안전은 앞세우면서도 정작 안전예산 확보는 뒷전이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정진후 정의당 세월호 침몰 사고 대책위 위원장이 최근 10년간 재난방재 예산과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 상 재난방재 예산 분석 결과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 시기(2003~2007) 재난방재 예산은 2003년 1230억원 규모에서 2007년 3300억원 규모로 늘어나 연평균 21.82% 증가(2006년 재해추경 제외)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2008~2012) 역시 2008년 3940억원 규모에서 2012년 9670억원으로 확대돼 연평균 19.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재난관리 예산 투자계획은 뒷걸음질 쳤다.
2013년 9840억원에서 2017년 8040억원까지 매년 감소하는 것으로 잡혀 있으며, 연평균 증가율도 -4.9%에 달하고 있다.
정 의원은 이에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기본책무인데 예산 편성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음에도 재난·재해·안전관리 예산을 홀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4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각 부처는 모든 안전 관련 예산과 업무를 철저히 재검토해 달라"며 "안전에 대한 국가 틀을 바꾸는 데 예산을 우선순위로 배정하고 인력과 예산을 중점 지원해달라"고 지시했다.
더불어 국가안전처 신설 계획과 올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재난관리 분야 재정투자 계획을 수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재난관리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칫 국가안전처 설립 등 중앙정부 중심의 재난안전 예산 쏠림현상이 심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7개 시·도 중 59%에 달하는 10개 지자체가 법정확보액에 못미치는 재난관리기금(지자체가 대형 재난, 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적립해야하는 기금)을 보유하고 있어 재난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에 대비해 세금의 일부를 '재난관리기금'에 적립해야하지만 기준액을 못 채운 지자체가 절반 가까이나 됐다. 특히 인천, 광주는 확보해야 할 기금 대비 적립 기금의 비율이 30%에도 못 미쳤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전국 17개 지자체 시 ·도 본청의 재난관리기금 확보액은 2조3819억원으로 법정 기준액(2조8406억원)의 84%에 머물렀다.
지자체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매년 최근 3년간 보통세 수입의 1%를 재난관리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시도별로 보면 17개 지자체 중 8곳이 법정 기준액에 미달했다. 특히 인천·광주(26%), 울산(38%), 대구(43%) 등 4곳은 확보율이 50%를 밑돌았고 대전(80%), 경기(81%), 충북(83%), 경북(90%) 등 4곳도 법정 기준액에 미치지 못했다.
법정 기준액 전액(100%)을 채운 곳은 서울, 강원, 충남, 전북, 전남, 제주, 세종 등 7곳이었고 부산(102%), 경남(102%)은 초과 달성했다.
재난관리기금 적립제도는 지자체가 스스로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 각종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재원 부족을 이유로 적립을 미루거나 통합관리기금으로 합쳐 일반 사업비로 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재난 관계부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재난방지의 핵심은 돈"이라며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책임감 있는 인력을 길러내고 재난구제에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추려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뒤늦게 재원마련의 절박함을 깨달은 것 같다. 이제라도 꼼꼼하게 미래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