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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일문일답]박지성 "내 축구인생은 7점"

스포츠뉴스팀 기자  2014.05.14 14: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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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캡틴' 박지성(33·에인트호벤)이 14일 수원 영통구 권선동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박지성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선수 생황을 되돌아 보고 연인 김민지(29) 전 SBS 아나운서와의 결혼식(7월27일) 등 향후 계획에 관해 소개했다.

박지성은 자신의 축구 인생에 10점 만점에 7점을 매겼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내가 경기장에 있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는 정말 좋은 선수였고, 원하는 선수 생활을 한 것이다"고 전했다.

박지성은 "대한민국이 브라질월드컵에서 첫 원정 8강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월드컵이 쉬운 대회는 아닌 만큼 8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부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성은 향후 계획으로 "지도자 생활이나 해설가와 같은 방송 활동은 아니다. 축구 행정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정확한 목표는 아니다"고 전했다. 다만 무엇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결혼 후에는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 거주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박지성이 선수 생활을 유럽에서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얘기나 자신 때문에 김 전 아나운서가 대중의 관심을 받아 힘들었을 것이라고 미안해 한다고 한 얘기 등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박지성은 자신의 멘토로 거스 히딩크(68) 감독을 꼽았다. 자신을 2002한일월드컵 대표로 발탁해주고 유럽 무대로 진출시켜준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몸집도 작고, 스피드도 떨어지는 자신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히딩크 감독이 대표 시절 자신에게 했던 "지금처럼 열심히 훈련을 하면 언젠가 영국, 스페인 등 큰 리그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고백했다.

박지성은 다시 입고 싶은 유니폼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꼽고 다른 하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닌 잉글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꼽았다. 가장 행복했던 선수 생활이 한국 대표선수였고, 가장 아쉬웠던 선수 생활이 2012~2013시즌 QPR이라는 의미다.

◇다음은 박지성과의 일문일답

- 결혼식은 어디서 하고, 어떻게 진행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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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에서 할 예정이다. 나머지 구체적인 상황들은 스튜디오로 연락하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은퇴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당분간 휴식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겠다. 당분간 시간을 갖겠다. 국내가 아닌 유럽에서 생활할 것 같다."

- 은퇴를 결정한 정확한 시점은.

"올 2월께다. 무릎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경기를 하고 나서 바로 운동을 할 수가 없었고, 4일 가량 휴식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다 보니 내년에도 경기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무릎 상태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지만 경기를 그 뒤로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다음 시즌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수술을 해서라도 다음 시즌 경기를 할 수 있었지만 수술 후 회복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고 100% 완쾌된다는 보장이 없어서 고려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남은 선택은 은퇴 밖에 없었다. 내 의지가 은퇴라고 하더라도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와의 계약관계가 있다. 그래서 구단주를 만났다. 모든 상황을 설명했고, 너무나 흔쾌히 받아줬다. 은퇴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지금 은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 김민지 전 아나운서의 근황은 어떤가, 전화통화를 했을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현재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다. 오늘 기자회견을 잘 하고 오라고 했다. 그 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했다. 앞으로 잘 해주겠다고도 했다. 나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에 대해서 (김 전 아나운서에게)아직까지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행복하게 해주겠다.”

- 오늘이 공교롭게 월드컵 개막 D-30이다. 박지성이 없는 월드컵인데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갖고 경기장에서 보여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상을 조심하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하는 게 선수들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PSV에인트호벤에서 더 뛸 생각은 없었나.

"내가 요청한 적은 없다. PSV구단에서 내게 직접적으로 요청한 것도 없다. 다만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다. 내 상황을 설명했고 PSV도 이해했다. QPR은 구단주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만약 정상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내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에 PSV에서 1년 임대 연장을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았다."

- 본인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꿈이 있다면.

"일단 지도자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은 누누이 밝혀왔다. 자격증도 없어 지도자를 할 수 없다. 지도자 이외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행정가를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확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할 것이다. 그것을 준비해서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기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과거로 돌려서 어느 순간을 즐기고 싶나.

"2002년 월드컵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려서부터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었고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다. 막내로서 다른 부담과 아무 생각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 자신의 선수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글쎄.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운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 다른 2002년 월드컵 스타 가운데 송종국 안정환 등은 방송 해설을 하고 있다. 해설에 뜻이 있나.

"해설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설가를 하게 된다면 선수들 비판을 너무 많이 할 것 같다. 후배들에게 그럴 수 없다. 비판하기 싫어서 해설가는 못될 것 같다."

- 은퇴를 하지만 에인트호벤 코리안투어에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다. 고국 팬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뛰는 무대다.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PSV유니폼을 입고 뛰는 경기는 방한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자선경기를 인도네시아에서 하는데 아마 그때도 유니폼을 입을 것이어서 그 경기가 마지막일 것이다. PSV 유니폼을 입고 국내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결과도 내용도 좋았다. 이번에는 그 당시와 많은 변화가 있지만 국내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

- 박지성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다. 포스트 박지성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을 해야지 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축구 스타일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선수로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가, 유혹을 떨쳐내고 집중할 수 있느냐다. 포기하지 않고 집중한다면 누구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 2005년 유럽축구연맹(UEFA)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많은 골을 넣었고 많은 승리의 순간, 클럽팀에서 어떤 순간이 기억이 남았나.

"많은 골을 넣지는 않았다.(웃음)아무래도 소속팀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 2004~2005 에인트호벤, 맨유에서 마지막으로 우승을 거뒀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일본에서도 마지막 시즌이 기억난다. 각 팀마다 기억에 남는 시즌이 있다. 좋은 성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4개 정도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QPR에서는 다른 사람이 뽑아도 뽑을 만한 경기가 없었던 것 같다. 좋을 때도 있으면 안 좋을 때도 있으니까."

- 크리스마스에 프로포즈, 어떻게 프로포즈? 자녀 계획은 어떤가.

"자녀 계획은 상의를 안 해봐서 아직 모르겠다. 글쎄,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웃음) 프로포즈는 크리스마스에 했다고 김민지 아나운서가 밝혔다. 지난해 12월25일에 프로포즈를 했다. 이곳에서 했다. 꽃다발과 반지와 편지로 프로포즈를 했다."

- 해외파는 활발하지만, K리그가 상대적으로 침체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K리그가 침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해외에 나갔다. K리그는 아시아에서 수준 높은 리그라는 것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증명하고 있다. 유럽파 선수들과 기량 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단지, 경험적인 측면에서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반면에 K리그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개개인적인 실력 차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입었던 유니폼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아쉬운 순간이나 후회됐던 순간이 있다면.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무릎 부상이 가장 아쉽다. 그 이외에 아쉬운 순간은 특별히 없다."

- 브라질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월드컵을 순수한 팬으로 보게 됐는데.

"월드컵을 밖에서 팬으로서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대표팀 되기 전에는 밖에서 봤다.(웃음) 어려서 월드컵을 뛰기 전과 지금은 바라보는 느낌이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선수로서의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월드컵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선수들과 팀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입장이라 개인적으로도 기대된다. 브라질에 갈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 앞에 지금까지 박 선수가 입었던 10개의 유니폼이 있다, 이 중 단 1개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다면 어떤 유니폼을 입고 싶은가.

“개인적으로 두 개를 입고 싶다.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당연히 국가대표 유니폼이다. 어려서부터 꿈은 국가대표였다. 당연히 국가대표 유니폼을 선택할 것이다. 하나 더 고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QPR 유니폼을 고르고 싶다.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 무릎을 다친 것은 특별한 경기에서였나, 아니면 뛰고 뛴 게 축적이 돼서인가.

"경기 중에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다. 무릎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즌과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부터 안 좋았다. 경기 중 부상은 아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무릎 수술을 두 번 했다. 경기 중 부상이 아니었으니 자연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 은퇴 시점에 부모님과 어떤 말을 나눴나. 지금 드리고 싶은 말은.

"아버지는 더 했으면 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부상을 너무 싫어하셔서 은퇴하는 것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조금 더 빨리 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부모님이다. 어려서부터 나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셨다.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힘든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 빚을 갚으며 살아가겠다.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고 사랑한다."

- 7월25일 올스타전 이야기를 했는데, 고별전이 될 듯하다. 자세히 소개해달라.

"그렇게 자세히 설명할거리는 없다. 25일에 하는 것은 확정적이다. 물론 K리그 선수들과 함께하기로 한 것은 정해졌다. 그 외에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프로축구연맹과 지금 협의 중에 있다. 그 경기가 팬들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한다."

- 경기를 뛰면서 숱하게 평점을 받았는데, 선수 박지성에게 평점을 준다면.

"10점 만점이면 좋겠지만 완벽한 선수는 없다. 나 역시도 내 자신이 완벽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7점 정도 주고 싶다."

- 활동량 많은 플레이 스타일로 한국 축구의 색다른 면을 보여주고 이정표도 제시했는데, 본인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평가한다면.

"선수마다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있다. 그 장점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느냐, 팀을 위해 경기를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내 장점은 활동량이었고, 그 능력을 어떻게 최대한 부각하느냐도 중요한 과제였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란한 테크니션이 아닌 것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내 나름의 방식대로 축구를 했고 즐겁게 축구를 했다. 화려한 기술에 대한 부러움은 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어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포스트 박지성이야기는 많이 나왔는데 포지션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누구인가.

“포스트 박지성이라고 얘기할 만한 선수들은 이미 내 이름을 지운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이름을 갖고 선수 생활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제2의 박지성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손흥민과 김보경을 얘기했지만, 당시 대표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고 선수 생활의 꽃을 피워나가는 단계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미 제1의 손흥민과 제1의 김보경이 돼 있다."

- 많은 관심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가.

“부담이 안 됐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유럽에 있어서 부담을 느끼는 강도가 줄었다. 물론 대표팀 경기를 할 때면 피부로 와 닿았지만 대표선수라면 당연히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안고 가야 할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부담감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였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인 것은 국내에서 계속된 부담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그 부담을 덜었던 것이 선수생활을 오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언젠가 한 번은 K리그에서 뛰는 박지성을 상상해본다. 이에 대한 생각은.

”K리그에서 뛸 생각을 해본 적은 분명히 있다. K리그 진출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은 딱 한 번 있었지만 무산되면서 K리그에 올 수 없었다. 왔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원하는 경기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겠지만 흥행에 조금 도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 가장 고마웠던 선수, 가장 껄끄러웠던 선수가 있다면.

"가장 껄끄러웠던 선수는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스스로 경기를 망쳤던 적은 있을 수 있지만 특별히 어느 한 선수가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처음 유럽에 갔을 때는 나보다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라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고마웠던 선수는 매우 많다. 모든 팀에서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강하게 성장하도록 독려해줬다. 안 좋게 했던 것도 유럽에서 내가 살아남는 데 버팀목이 됐다. 성장하는 데 좋은 약이 됐던 것 같다.”

- 지난 아시안컵 때 대표팀 완장 찬 상태에서 헹가래를 받지 못했는데, 대표팀 완장을 차고 은퇴경기를 할 생각은.

"나도 헹가래를 쳐줬는데 내 부분만 편집이 됐던 것 같다. (대표팀 완장을 차는 것은)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은퇴한 지 오래 됐고, 대표팀이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여력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시간이 지나서 하게 되면 경기장에서 뛰어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 힘들 것 같다."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대표팀에 덕담이나 조언이 있다면. 구체적인 조언들을 들려달라. 이번에는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한다면.

"내가 관여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대표팀이 8강을 목표로 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원정에서 16강에 들었기 때문에 그 위의 목표는 8강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결코 쉬운 대회는 아니다. 목표를 넘어서 새 목표를 이루기란 너무 힘들다. 이번이 될지, 그 다음이 될지는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단지 8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많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그룹예선을 어떻게 돌파하느냐, 16강을 가느냐 마느냐가 관건인 만큼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인 만큼 첫 경기를 이기면 분위기를 몰아서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어 (상대국들의)장단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끼리 공유하고 코칭스태프의 지휘를 따른다면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월드컵 경험이 없는 부분들을 많이 상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기억나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에서 들었던 기억에 남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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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름대로 성장하면서 그 분들로부터 그 나이대에 지도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승들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히딩크 감독님이다. 나를 월드컵에서 뛰게 해줬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데려가 줬다.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 퍼거슨 감독님도 내가 세계 최고의 레벨에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영향을 줬다. 좋은 경험을 하면서 좋은 선수들과 경험을 쌓았다는 것은 내 자산이다. 한국축구에 도움되는 부분을 연구하고 싶다. 축구는 덩치가 크고 빠르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히딩크 감독님이 해줬던 말 중 하나는 '지금과 같이 열심히 훈련을 하면 언젠가는 영국, 스페인 등 큰 리그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였다.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감독님의 말이라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 많은 수식어를 얻었는데,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많은 분들이 내가 경기장에 있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영광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나는 정말 좋은 선수생활을 했구나, 원하는 선수생활을 했구나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