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속세를 그림으로" 목소리는 큰데…세수 우려에 도입 '난망'

이건희 전 회장 별세 후 미술품 물납 목소리
"국가가 미술품 받아 미술관에 전시해 달라"
문화계 "미술품 물납제 도입" 목소리 내지만
실상은 가치 평가 딜레마…'세수 감소' 문제도
기재부 "요구 인지해 검토…초기·원론적 수준"

 

[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기자]  "귀중한 문화재나 뛰어난 작품 중 상당수가 재산 상속 과정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급히 처분되는 사례가 빈번이 발생한다. 개인이 보유한 미술품이 국가 소유가 돼 국공립 미술관의 소장품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세법을 조속히 개정해 달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미술계 협회·단체가 '미술품 물납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통해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한국의 문화 예술 시장 수준과 규모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목소리다.

정부는 이런 요구에 따라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5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문화계의 미술품 물납제 도입 요구를 인지하고,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물납제란 현금이 아닌 특정 자산을 상속세로 내고, 그 가치만큼을 납부액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현재는 물납 대상이 부동산·유가 증권으로 한정돼 있는데, 미술품을 추가하려면 기재부 등이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지난해 말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연 바 있다.

미술품 물납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난해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국가 보물 2점(제284호·285호)을 경매에 부친 뒤 본격화했다. 지난 2018년 별세한 전성우 관장의 유가족이 부과 받은 상속세의 재원을 마련하고, 미술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안타까운 결정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며 미술품 물납제 요구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가 생전에 보유했던 컬렉션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컬렉션 규모는 한국 고미술품·근현대미술품, 서양 근현대미술품을 총망라해 1만2000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핵심이 되는 서구 유명 근현대미술품 총액만 2조~3조원에 이른다는 추정이다.

그러나 미술품을 상속세로 받기에는 당장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가치 평가'다. 상·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에 따라 국세청은 전문가를 위촉해 물납 자산의 가치를 측정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평가액이 일치하더라도 시장에 내놨을 때 이른 시일 안에, 그 값에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생존 작가의 미술품이 물납 대상에 포함되면 더 골치 아파진다. 정부가 매긴 가치가 해당 작가의 가치로 고착되는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0월 내놓은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한 입법론적 검토' 보고서를 통해 이런 경우에는 "미술품 시장을 교란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일본 등 미술품 물납제를 먼저 도입해 시행 중인 국가가 '사망 작가의 작품'만, '상속세'에 한해 제한적으로 받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세수 감소다. 김우철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받아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면 한국의 문화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 세수가 확정적으로 줄어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건의 사항을 제기하면 검토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아주 초기적, 원론적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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