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어"라는 애정 담긴 함성으로 시작한 공연은 "멋있어"로 끝났다. 드물긴 하지만 "잘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광란의 시간'이다.
'월드스타' 싸이(36)가 내한했다. 싸이는 22일 밤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 '달밤에 체조'를 열었다. '강남스타일' '젠틀맨'의 유머러스한 뮤직비디오만 보고 싸이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내 팬이 기억하는 싸이는 무대 위에 있다. 싸이의 특기이자 장점은 '공연'이다.
싸이는 1만2000명의 '진정 즐길 줄 아는 이 나라의 챔피언'들과 무대를 완성했다. 그는 무대에서 '연예인'이 돼 '챔피언'들을 웃고 울게 했다.
관객 모두가 일어나지 않으면 공연 시작을 하지 않을 모양새였다. '일어나'라는 단어로 가득 찬 무대 스크린이 역할을 다 하자 싸이가 등장했다.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라는 노랫말이 관객을 부추겼다. 아낌없이 터진 폭죽이 잔향을 남겼다. 싸이도 관객도 첫 곡부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공연 내내 팬을 자리에 앉힐 생각이 없었다. '연예인' '라이트 나우(Right Now)'에서 싸이가 가장 자주 한 말은 "뛰어"였다. 좌석에서 일어나 점핑하는 관객들로 객석이 흔들거렸다. 자주 터진 폭죽은 기쁨에 찬 관객들의 표정을 드러나게 했다.
"올해로 데뷔 13년째 맞은 가수, 여러 가지 명칭들은 뒤로 한 채 그냥 가수 싸이입니다."
제자리를 찾은 듯 벅찬 표정이었다. "여러분들의 아침을 제가 걱정할 이유는 없잖아요"라는 말이 다시 관객을 긴장시켰다. "지구력, 근력, 끈기만 명심하면 오늘 집에 갈 일 없다"는 말은 대학축제에서 학생들이 건네는 소주를 벌컥거리던 싸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무대의 크기를 떠나 제 몫을 다하는 '공연형 가수'였다.
'젠틀맨'을 발표하기 전 한 개의 곡만 히트하고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로 끝날 수도 있다는 염려는 국내 팬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가진 가수였다. "'새'의 그늘에 가려져 '행복했어'라는 후렴부만 기억하시더라"며 소개된 '끝', 여성을 카메라로 잡고 가사에 맞는 포즈를 요구한 '내 눈에는' 무대도 팬들과 충분히 호흡을 나눴다.
무대를 내려가는 시간도 아깝다는 마음이었다. 그룹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를 부른 뒤, 여성 댄스가 싸이의 겉옷을 갈아입혔다. 흠뻑 젖은 셔츠도 벗으라는 팬들의 요구를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넘긴 뒤 스윙 버전으로 편곡한 '새'와 커플에게 예전 연인을 떠올리라며 '어땠을까'를 불렀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만든 '젠틀맨'은 관객들의 떼창과 수줍은 '시건방춤'을 이끌어냈다. 관객들이 LED 조명을 부착한 의상을 입고 오른 댄서들의 사라짐과 나타남을 즐기고 있을 때 싸이는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선미가 됐다. 여장하고 오른 싸이의 '24시간이 모자라'에 모두가 웃음이 담긴 경악을 쏟아냈다.
게스트로 나온 이승기는 싸이의 충격적인 비주얼을 잊게 하기 충분했다. 클로즈업된 싸이의 엉덩이를 보며 지르던 비명은 이승기의 얼굴을 보며 함성으로 바뀌었다. 이승기는 '되돌리다' '스마일 보이(Smile Boy)'를 부른 뒤 앙코르곡으로 '내 여자라니까'까지 불렀다.
생경한 '동양인'으로 살았던 해외가 아닌, 모두가 자신을 향해 환호를 쏟는 한국은 싸이에게 '낙원'이었다. 공연장 2층에서 등장한 싸이는 통로를 오가며 관객과 가깝게 호흡했다. 그리고 벅차했다.
"처음 말합니다. 2년 전 처음으로 '내가 과연 몇 살까지 가수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격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가수를 어느 날 그만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을 못 하는 내 삶은 어떨까?' 신체 한군데가 잘린 듯한 느낌일 것 같았습니다."
"혼자서 가수를 그만둘 날을 떠올리며 울기도 했다"는 그가 어렵게 마음을 부여잡고 내놓은 곡이 '강남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욕심에, 해외를 겨냥하고 계산적으로 만든 곡이 '젠틀맨'이었다.
"'젠틀맨'은 솔직히 저답지 못했던 노래였던 것 같아요. '강남스타일'은 누군가를 겨냥하지 않았어요. 재미있게 놀자 했던 곡이었어요. 하지만 '젠틀맨'은 '외국 사람들이 이 발음을 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했어요. 해외에 맞춘 저답지 못한 노래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 만드는 신곡은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할 겁니다"는 싸이는 가수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로 자신을 응원했다. 무대가 열리며 등장한 오케스트라는 '어쩔 수 없는 감동'을 더했다. 감상에 잠긴 관객들에게 뭉클한 가사가 인상적인 '아버지'가 다시 감동을 안겼다.
'위 아 더 원(We Are The One)' '예술이야'로 다시 달리는 무대가 이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강남스타일'은 관객 대부분이 말춤을 추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공연 초반 싸이가 강조한 '앙코르'가 당연하게 이어졌고 "원래 양껏 준비하는 가수" 싸이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오래 이어졌다. "나중에 여러분 집에 가더라도 오늘 하루 곱씹으며 나를 잊지 말어"라는 '낙원'의 가사가 잔향처럼 남았다.
싸이는 이날 공연에 앞서 트위터에 "두 차례의 격전 후 오늘 또 있을 격전 준비 중. 삭신이 으스러지는 느낌. 근데 왜 저는 이 느낌이 짜릿하고 설렐까요?"라고 적었다. 싸이는 20일부터 24일까지 회당 1만2000명씩 6만명을 모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