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3000여 팬들의 열기 속에서 무대에 오른 아가씨는 첫 내한공연이었다.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낸 의상, 피아노 앞 의자에 앉아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한국에서 마니아를 중심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이후 2년8개월 만인 2012년 4월28일 이 아가씨의 두 번째 내한공연은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졌다. 팬 숫자는 17배나 늘어난 5만명. 기행은 여전했다. 아니, 더 심해졌다. 앞에 키보드를 달고 뒤에 태극기가 꽂힌 긴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와 끈적한 동성애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배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가롯 유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퍼포먼스로 자신의 내한공연을 반대한 한국 기독교에 응수하기도 했다. 생고기로 만든 옷으로 화제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 그녀는 생고기를 떠올리는 의상을 입고 생고기처럼 갈고리에 매달려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28)가 2년4개월 만에 세 번째 내한공연을 열었다. 16일 밤 역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AIA 리얼 라이프, 나우 페스티벌 2014-YG패밀리'의 둘째 날 헤드라이너로 나섰다.
전날 입국한 가가는 비교적 평안(?)하게 한국에 안착했다. 두 번째 내한공연 당시 기독교 단체들의 공연 반대집회, 18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 등으로 시끌벅쩍했던 것에 비해 조용했다. 태극기를 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엄숙함도 보였다.
그래도 가가는 가가였다. 광기로 무장한 무대는 여전했다. 벌써 세 번째 내한공연을 접한만큼 충격이 덜할 만한데 역치는 계속 높아졌다. 역시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다.
네 번째 정규앨범 '아트팝(ARTPOP)'의 월드 투어 '아트레이브: 더 아트팝 볼(artRAVE: The ARTPOP Ball)'의 하나인만큼 이 앨범의 수록곡 '아트팝'으로 포문을 열었다. 기술적인 문제로 예정됐던 시간보다 약 8분 가량 늦어진 오후 9시8분에 출발했다.
여러 촉수가 붙어 있는 날개를 등지고 기괴하게 등장했다. 가슴 밑에는 말 그대로 큼직만한 볼(ball)이 박혀 있었다. 금발의 가발을 쓰고 번쩍거리는 금발 보디수트를 걸쳤다.
'아트팝'을 마친 뒤 "코리아!"라고 괴성을 지른 가가는 'G.U.Y.'로 무대를 이어나갔다. 찰랑거리는 금발 가발로 바꿔 쓰고 조개껍질 모양의 브래지어 등 비키니 차림으로 '비너스'를 부르는 그녀는 여전히 과감했다. 엉덩이는 아니나 다를까, 훤히 드러났다.
로봇처럼 "마이. 네임. 이즈. 레이디. 가가"라고 외친 그녀는 "5년 전 처음 왔는데 신나게 놀아보자"면서 두 손의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대표곡 '저스트 댄스' '포커페이스'가 잇따라 울펴퍼지자 주경기장의 온도가 치솟았다. '파파라치'를 부를 때는 문어 모양의 옷을 입고 나와 문어의 다리 하나를 떼기도 했다.
'도프'를 선보일 때는 건반 앞에 차분히 앉아 "마약보다 네가 더 필요해"라고 절절하게 노래했다. 팬들은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가가는 '뜻밖에' 팬들에게 뭉클함도 안겼다. 역시 건반 연주로만 들려준 '본 디스 웨이'의 도입부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준 한국계 미국인 '보경'을 거명하며 고맙다고 눈물을 보였다.
'본 디스 웨이' 노랫말에는 "왕따가 돼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상한 아이로 낙인 찍혀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가가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보경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가가는 2012년 사재를 털어 왕따 청소년을 돕기 위한 '본 디스 웨이' 재단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오래 가져가지는 않았다. 녹색 가발을 쓰고 검정 비키니를 입은 채 연신 몸을 격렬하게 비틀며 '아우라'를 들려줬다. 이후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드렸다가 무대 한편에 마련된 침대 위로 올라가 끈적하게 '섹스 드림스'를 불렀다.
객석을 등진 채 거리낌 없이 브래지어를 벗고, 의상을 바꿔입기도 했다. 이어 액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춘리'를 연상케 하는 복장으로 '배드 로맨스'를 노래했다.
앙코르곡 '집시'를 부를 때는 하얀 가발을 쓰고 등장, "나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집시로서의 생활을 사랑하지"라고 노래한 뒤 "굿바이 코리아"라고 소리 질렀다. 한참 손을 흔든 뒤 무대를 떠났다.
가가의 광란은 '포프'의 은혜로 충만한 한국의 '특별한 날'의 마지막을 수놓았다. 과연 '밤의 여신'이었다.
약 100분 간 펼쳐진 공연 내내 "아이 러브 코리아" 등 "코리아"를 수십번 외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거듭 표했다. 팬들 역시 가가의 콘서트 때마다 출석 체크와 같은 다양한 '가가 코스프레'로 화답했다.
가가의 '아트레이브: 더 아트팝 볼' 투어는 페스티벌 형식과 아레나 형식이 나눠져있다. 아레나 형식은 캣워크가 포함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데 페스티벌은 메인스테이지 위에서만 이뤄져 역동성이 비교적 부족하다. 그러나 2년4개월 전 콘서트 대신 광활한 무대로 거리감을 느꼈던 팬들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는 무대였다. 때문에 공연장에 운집한 2만명은 내내 더 뜨겁게 열광할 수 있었다.
이날 페스티벌의 낮 공연 라인업에는 '빠빠빠'의 그룹 '크레용팝'이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 6~7월 가가의 미국 투어의 오프닝 무대를 꾸몄다. 크레용팝은 공연 도중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에 함께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AIA 리얼 라이프, 나우 페스티벌'에는 월드스타 싸이를 비롯해 한류그룹 '빅뱅'과 '2NE1' 등이 속한 YG엔터테인먼트의 브랜드 공연 'YG패밀리'가 헤드라이너로 나섰다. 첫날 3만5000명, 이튿날 2만명 등 이틀 간 총 5만5000명이 운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