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더 깊고 높아진 오리지널 사운드, 다시 만개한 록밴드 '들국화'

  • 등록 2013.12.03 11: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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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고 또 걷는다. 새벽 그대 떠난 길을 지나 아침은 다시 밝아오겠지 푸르른 새벽 길. 거친 이곳 꺼지고 산 위에 돌맹이 길 지나."

2일 밤 미리 들어본 록밴드 '들국화' 새 앨범의 첫 트랙 '걷고, 걷고'의 노랫말은 이 음반을 오롯이 요약한다. 1985년 데뷔 이래 '걷고 걷고 또 걸어' 다시 '푸르른 새벽 길'을 걷는 듯한 신곡 7곡이 실렸다.

27년 만에 전인권(59·보컬), 최성원(59·베이스·보컬), 주찬권(1955~2013·드럼·보컬) 원년멤버로 녹음한 앨범이다. 타이틀은 1집 '들국화'와 동명 타이틀로 정했다. 27년간 변하지 않은 '들국화'의 음악적 자아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다. 그 만큼 들국화의 초창기 사운드 특징이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몸이 쇠해 지방 병원에서 요양까지 한 전인권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특유의 쇳소리가 여전한데, 여기에 투병과 삶의 흔적까지 더해져 더 애달퍼졌다. 그간 겪은 고통과 아픔 탓인지 솔적인 색깔이 더 짙어졌다.

새벽을 깨우는 듯한 트럼펫 소리로 시작하는 '걷고, 걷고'는 전인권이 50대 후반에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곡이다. 20대 후반 전인권의 모습을 담은 노래 '행진'이 거칠었던 것과 비교된다. 다소 잔잔한 미디엄 템포의 곡으로 삶을 달관한 듯한 뉘앙스다.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뒤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만나고 노래하고 생활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만든 노래라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전인권이 작사하고 최성원이 작곡한 곡으로 두 사람이 처음으로 공동 작업한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올해 초 들국화가 공연 때마다 불러 이미 알려진 곡이다. 강렬한 드럼 비트와 묵직한 베이스는 들국화가 록 음악을 하는 밴드임을 다시 일깨워준다.

세번째 트랙 '겨울비'는 작곡가 겸 가수 조동진(66)의 목소리로 1980년대 초 발표됐던 노래다. 조동진의 동생이자 원작자인 조동익(53)이 30년 전 술자리에서 전인권이 부른 것을 듣고 조동진 버전과 너무나 다른 느낌이 난다며, 나중에 이 곡을 불러달라고 했다. 이번에 약속을 지켰다.

단순한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하는 네 번째 트랙 '재채기'는 미묘한 편곡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생전에 들국화 드러머뿐 아니라 솔로 활동으로 싱어송라이터 능력을 보인 주찬권이 곡을 쓰고, 전인권이 노랫말을 붙인 '하나둘씩 떨어져'는 어쿠스틱 청아한 멜로디가 슬픔을 안긴다. 후렴구의 가사를 쓰지 못하던 전인권이 주찬권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만큼, 애절함이 배가됐다.

여섯번째 트랙 '친구'는 싱어송라이터 김민기(62)가 작사·작곡했다. 들국화가 부르는 김민기에 대한 헌사다. 들국화 멤버로서 먼저 떠난 키보디스트 허성욱(1962~1997), 주찬권에 대한 헌시이기도 하다. 전인권의 흘리는 창법이 깊게 내재된 슬픔을 끌어낸다. 이미 녹음이 완성된 곡이었으나, 이 음반의 마무리 작업만 남기고 주찬권이 먼저 세상을 뜬 후 전인권이 동일한 반주 위에 더욱 감정을 보태 다시 노래했다.

마지막 신곡 '들국화로 필래(必來)'는 최성원과 주찬권이 처음으로 듀엣으로 부른 곡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주찬권이 사망하기 전날까지 녹음한 곡으로 애틋함이 더하다. 원 버전에 코러스 느낌으로 참여한 주찬권의 보컬을 최성원의 요청으로 듀엣곡으로 복원, 재구성했다.

앨범은 이처럼 '들국화'하면 떠오르는 사운드와 감성으로 넘실댄다. 세월의 흔적, 주찬권의 죽음이 보태져 더 애잔한 맛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27년 만에 원년 멤버가 뭉쳤음에도 당시 음악을 재현한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시켰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대중음악평론가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들국화는 단지 건재할 뿐만 아니라 부단히 진화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주찬권의 허망한 죽음으로 원년의 주역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 만들어진 이 음원들은 문자 그대로 소중한 기록(recording)"이라고 평했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들국화의 주문은 이렇게 다시 통해 마침내 '들국화로 필래(必來)'라는 바람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앨범을 홍보하는 포츈엔터테인먼트는 "주찬권의 별세로, 들국화 멤버들은 신보활동에 관련된 어떠한 공식활동도 없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3일 0시 미리 공개된 '걷고 걷고'는 신세대 가수의 음원처럼 상위권에 안착하지는 않았으나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00위권에 머물며 관심을 받고 있다. '들국화'는 6일 온오프라인에 발매된다. 신곡 7곡이 담긴 앨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이전 앨범 수록곡 12곡이 담긴 리메이크 앨범 등 2장의 CD로 구성됐다. 오프라인 음반에는 영국의 팝 록그룹 '더 홀리스'의 '히 에인트 헤비, 히스 마이 브라더(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 스톤스'의 '애즈 티어스 고 바이(As Tears Go By)'를 커버한 2곡도 추가로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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